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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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 신드롬, 그는 트로트가 아닌 임영웅을 부른다

D.H.Jung 2020. 6. 1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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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차트·광고·방송 모두 장악한 임영웅 신드롬의 실체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는 그 말-" TV조선 <미스터트롯>에서 현역부로 첫 출연한 임영웅이 노사연의 '바램'을 불렀을 때부터 이 신드롬은 시작됐던 것으로 보인다. 노사연이 부르는 '바램'은 온전히 임영웅의 '바램'으로 바뀌어 있었다. 특유의 속삭이듯 말을 건네는 듯 시작하던 곡은 완벽히 통제된 완급을 통해 오히려 그 꾹꾹 눌려진 감정들이 증폭되는 결과로 이어졌고, 클라이맥스에서 터트릴 때는 확실히 터트렸다가도 그 마무리에 있어서는 다시 감정을 추스르듯 절제된 목소리로 차분히 내려앉았다.

 

그 때 아마도 시청자들은 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트로트에 대해서 갖고 있던 편견과 선입견이 여지없이 깨지는 소리를. 트로트하면 꺾기 같은 기교가 먼저 떠오르고 조금은 과장된 감정 표현과 약간의 느끼함 같은 것들을 막연히 생각했던 분들이라면 임영웅의 노래는 그것과는 너무나 다른 트로트의 맛을 보여줬다. 물론 그건 오해다. 과거 이미자가 부르던 트로트가 전해주던 담백함과 절제되면서도 절절한 감정들을 떠올려보라. 다만 최근 들어 트로트가 침체기를 겪으며 세미 트로트가 쏟아져 나오고 그러면서 마치 과거의 정통 트로트는 조금 느끼한 어떤 것으로 치부되면서 막연히 갖게 된 편견이자 선입견.

 

지금이야 트로트가 여러 음악 장르 중 하나로 분명히 구분되어지지만,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트로트는 가요의 중심적인 정서를 이루던 요소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른바 '뽕끼'라고 표현되기도 하는 민요와 국악 베이스의 우리 식 정서는 서구식 장르들과 접합되면서도 늘 뿌리 깊숙이 내려 있었다. 가왕 조용필의 초창기 음악이 민요 창법 특유의 색채를 얹어 절절하게 부르던 트로트였고 거기서부터 끊임없이 진화해 다양한 장르로 확장되는 그 과정은 트로트라는 장르가 얼마나 우리네 가요에 뿌리 깊은가를 잘 말해준다.

 

하지만 아이돌 그룹이 이끄는 K팝이 마치 우리네 음악의 전부인 것처럼 가요계 전면을 덮어버리면서 트로트는 중심에서 주변으로 밀려난 신세가 되었다. 그러던 것을 다시 중심으로 끌어낸 건 다름 아닌 TV조선 <미스트롯>에 이은 <미스터트롯>이었다. 이들 트로트 오디션을 통해 트로트는 젊어졌고 본래 자리였던 다양한 장르들과 너무나 잘 어우러진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우리네 가요가 갖는 정서의 뿌리였다는 새삼 되새기게 했다.

 

임영웅이 최근 들어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건 트로트의 본래 맛을 가져와 임영웅 특유의 방식으로 소화해내면서 노래 한 곡 안에 세대를 통합시키는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는 그에게서 차분하면서도 진심어린 가사를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털어놓는 정통 트로트 특유의 맛에 감탄하고, 젊은 세대들은 그것이 진정 트로트인가 싶을 정도로 편안해진 임영웅식의 노래에 빠져든다. 사실 조영수 작곡가가 쓴 신곡 '이제 나만 믿어요'는 굳이 트로트가 아니라 발라드라고 해도 괜찮을 듯한 색깔을 갖고 있다.

 

마음을 담아 진심을 이야기하듯 차분하게 부르며, 때론 완벽에 가까운 완급조절로 듣는 이들의 감정을 쥐락펴락하고, 절정에 이르러서는 폭발적인 시원함을 보여줬다가도, 절제미가 돋보이는 마무리를 선사하는 임영웅의 노래는 그래서 그냥 트로트라고 표현하기는 부족한 면이 있다. 그건 마치 이미자가 이미자를 부르고, 조용필이 조용필을 부르는 것처럼, 장르적 구분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임영웅이 임영웅을 부르는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트로트는 이로써 꽤 길었던 침체기를 지나 본래 자리였던 우리네 가요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같은 트로트 오디션이 만들어낸 젊은 트로트라는 새로운 무대와 그 무대에서 탄생한 송가인, 임영웅 같은 가수들이다. 그 중에서도 트로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버려, 장르 자체를 무색하게 만들고, 그럼으로써 신구 세대를 모두 빠져들게 하는 임영웅의 지분은 그 누구보다 크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