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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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동거하는 TV, 결혼은 어디 있나

D.H.Jung 2008. 6. 26.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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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결혼했어요’, 그 재미 속에 남는 우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우리 결혼했어요’는 가상으로 설정된 남녀들의 결혼생활을 리얼리티쇼 형식으로 담아낸 프로그램. 전성호 PD는 ‘우리 결혼했어요’가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자평한 적이 있다. 아마도 가상이지만 타인들의 좌충우돌 결혼 생활을 들여다봄으로써 타산지석이 될 거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가상 결혼’이라는 말은 우리가 흔히 쓰는 ‘동거’라는 말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결혼은 ‘하는 것’이지만, 동거는 ‘해보는 것’이듯이, 이 ‘가상 결혼’도 그저 해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결혼했어요’가 보여주는 것은 결혼이 아니라 동거다.

바로 그 동거생활, 즉 결혼처럼 해보는 생활은 적어도 책임감이나 의무감 혹은 관계의 피곤으로 점철된 우리네 결혼생활이 자리한 사회 속에서는 환타지에 속한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주는 재미의 포인트는 현실적인 리얼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부족한 이 환타지를 충족시켜주는 데 있다.

따라서 정형돈-사오리 같은 현실적인 부부생활의 리얼리티는 이 프로그램의 주요 재미요소인 환타지를 상쇄시킨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은 알렉스-신애 같은 풋풋하고 절절한 연애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커플이거나, 크라운제이-서인영 같은 거침없고 개성강한 신세대 커플, 솔비-앤디 같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커플, 혹은 황보-김현중 같은 엇박자지만 잘 어울리는 연상연하 커플이다.

답답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그 달콤하고 유쾌한 환타지 속에 빠져보는 것이 무엇이 문제일까. 시청자들은 이미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이런 몰입과 관조의 기술을 터득하고 있다. 저건 가상이지 실제가 아니라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환타지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그 목적에 합당하게 충분한 재미를 주면 되는 것이라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동거생활을 보여주면서 ‘결혼했어요’라는 제목을 붙이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결혼에 대한 개념을 전적으로 혼동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가상결혼이라는 컨셉트로 ‘우리 결혼했어요’라는 제목을 달면서, 보는 이에게 이건 ‘가상의 결혼생활’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마치 ‘가상’이라는 전제를 달았기 때문에 괜찮다 생각될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 이것은 여전히 결혼생활이라는 강변을 하고 있다. 비록 가상이지만 결혼생활은 결혼생활이라는 말이다.

이로써 이 프로그램이 실제로 보여주는 동거생활은 결혼생활로 치환되면서 저 케이블TV에서 줄곧 방영되며 선정성 논란에 휘말린 동거 프로그램들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어찌 보면 ‘우리 결혼했어요’는 이미 케이블TV에서 방영되고 있던 ‘애완남 키우기 나는 펫’같은 동거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공중파 버전으로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뉘앙스의 차이다. 둘 다 같이 사는 것이지만 동거와 결혼은 그 뉘앙스가 다르다.  “나 결혼했어”하고 말하는 것과 “나 요즘 동거해”하고 말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는 동거 프로그램이 갖는 어두운 면들을 ‘결혼’이라는 용어로 포장함으로써 양지로 끄집어낸 혐의가 짙다. 여기에 일반인들이 갖는 남녀관계의 환타지를 결혼에 대한 환타지와 묶음으로써 자칫 자극적으로 흐를 수 있는 방향을 로맨틱 모드로 바꾸어주었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은 한 편의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데, 바로 이 부분이 스타들의 리얼리티쇼와 맞닥뜨리는 부분에서 폭발력을 갖게 되는 이유다. 하지만 동거생활을 결혼생활로 포장하면서 발생하는 결혼의 개념에 대한 혼란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이것이 그 열렬한 환타지에 대한 희구에 푹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면서도 한편으로 남는 우려의 실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