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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산후조리원', 같은 엄지원인데 여자·아내·엄마로 변해간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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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조리원'이 꼬집는 결혼, 임신, 출산에 대한 편견들

 

결혼을 하고 나면 아내가 되고 아이를 낳고 나면 엄마가 된다? 그래서 출산을 하고나면 더 이상 여자로서의 매력은 사라지게 된다? 이런 사회적 편견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tvN <산후조리원>은 출산 후 남편과의 관계가 달라질까 불안해하는 오현진(엄지원)의 상황을 통해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결혼, 임신, 출산에 대한 편견들을 꼬집었다.

 

아름답게 쏟아지던 별똥별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오현진의 가슴으로 그 별똥별이 날아와 꽂히는 꿈을 꾼 오현진은 출산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젖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산후조리원 원장 최혜숙(장혜진)의 마사지로 뭉친 젖을 풀어주는 다소 '동물적인 모습'을 남편 김도윤(윤박)이 보게 되는 상황. 출산 후 자꾸만 "가장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장면을 들키게 되는 오현진은 과거의 자신과 현재가 달라졌다는 데 불안감을 느꼈다. "수치심을 잃어버린 채 제3의 성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

 

세레니티 산후조리원에서 모범 엄마의 표상처럼 행동하는 조은정(박하선)은 이 시기가 부부사이의 터닝 포인트라며 그 시기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서로를 계속 사랑하는 부부로 사느냐 그냥 엄마 아빠 역할에 충실한 부모로 사느냐가 결정된다고 말한다. 조은정은 그래서 부부사이에도 긴장을 놓치면 안 된다며 "애 낳고 이 시기에 여자들 모양새가 참 별로"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 모습을 최대한 안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이루다(최리)라는 신세대 엄마가 마치 작가의 목소리가 빙의된 듯한 말로 꼬집는다. "에휴 결혼 진짜 피곤하네요. 아니 애 낳은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남편 바람 날까봐 걱정해야 되잖아요. 바람피우는 남자가 예방이 되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이 시기에 바람피우는 남자가 더 나쁜 거 아니에요? 왜 그 이유를 여자한테서 찾아요? 아니 이상해서요. 남편이 바람을 펴도 긴장을 놓친 여자 잘못이라 생각하는 게." 그러자 말문이 막힌 조은정이 아이를 낳아도 서로를 위해 노력하면서 사는 게 현명하다는 이야기였다고 하자 이루다가 마지막 일격을 가한다. "그럼 언니 남편은 무슨 노력을 하시는데요?"

 

이루다는 결혼에 대한 생각도 남달랐다. 아이를 낳았지만 결혼은 하지 않은 미혼모라고 했던 이루다는 아이 아빠인 세레니티의 원장 아들이 프러포즈를 했지만 이를 거절했다. 이루다는 결혼같은 건 안한다고 예전부터 말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뜻을 전했다. 원장 아들은 그 때는 아이가 없었고 지금은 아이가 있기 때문에 상황이 다르다고 했지만 이루다는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근데 우석아 요미가 생겼다고 내가 달라지는 건 아니잖아." 물론 이루다의 이런 이야기는 평범하다 보긴 어려웠지만 거기 담긴 의미는 분명했다. 결혼을 하거나 출산을 한다고 해도 자신이 달라지는 건 아니라는 것.

 

오현진이 스스로 자신이 달라지고 있다고 걱정하고 괴로워함으로써 남편까지 의심하게 되는 상황은 어째서 만들어지는 걸까. 그것은 여자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된다는 그 사회적 통념이 야기하는 것이다. 그런 통념에 의해 달라진 역할이 정해지고 그걸 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처럼 부여된다는 것. 괴로워도 마치 당연히 감당해야 할 일로써.

 

드라마는 남편 김도윤에 대한 오현진의 의심이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걸 통해 달라지는 건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도 마찬가지라는 걸 에둘러 말해준다. 그런 변화는 나이 들면서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자신이나 관계가 바뀌는 건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한다. 아내에게 숨기고 싶었던 치질 수술 사실을 들킨 김도윤 또한 오현진과 똑같은 감정을 느끼지만, 그들은 그 경험의 공유를 통해 더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에게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줄 수 있었던 시절은 끝났다. 하지만 달라진 우리의 관계도 제법 괜찮았다."

 

결혼, 임신, 출산으로 인해 우리들은 새로운 지칭을 갖게 된다. 여성들은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며 남성들은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된다. 그래서 부여되는 새로운 역할들이 생겨난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일게다. 하지만 그런 역할들이 늘어난다고 해도 거기 매몰되거나 그 역할들만 강요받는 삶은 결코 행복한 삶일 수 없다. <산후조리원>은 특히 여성들에게 결혼, 임신, 출산을 통해 더더욱 강요되는 역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비판하고 있다.(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