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며느라기', 지들 제사에 지들은 놀고 며느리만 생고생하는 건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며느라기', 지들 제사에 지들은 놀고 며느리만 생고생하는 건

D.H.Jung 2020. 12. 29. 11:19
728x90

'며느라기' 아이의 눈에 비친 제삿날 풍경, 그것 참 부조리하네

 

"아니 그러지 말고 내가 너 먼저 집에 데려다주고 난 돌잔치 들렸다 갈게." 갑자기 알게 된 시댁의 제사 소식, 무구영(권율)은 그날 겹친 돌잔치에 자기만 갔다 오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별 생각 없이 이런 말을 던진다. "내가 빨리 와서 도와줄게. 먼저 하고 있어. 어차피 나 있어도 도움도 안 되고 안 하던 일 갑자기 하려고 하면 방해만 될 게 뻔하니까." 그 말을 아내 민사린(박하선)은 이해할 수가 없다. "돕는다고? 나를? 구영아. 나는 니네 할아버지 얼굴도 본 적이 없거든? 내가 너를 돕는 거라고 생각되지 않니?"

 

카카오TV 드라마 <며느라기>가 가져온 건 세상의 며느리들이라면 누구나 저마다 언짢고 불편한 경험을 했을 제삿날의 이야기다. 무구영은 정말 이름처럼 순진무구한 건지 아니면 생각이 없는 건지 '도와준다'는 말을 꺼낸다. 따지고 보면 민사린에게는 직접적인 관계가 전혀 없는 분들의 제사다. 무구영의 할아버지 제사니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무구영은 민사린을 도와준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 된 이유는 시월드에 발을 들어서는 순간 단박에 드러난다. 시어머니는 "밤에 와서 절만 하고 가도 되는데"라는 맘에도 없는 빈말을 먼저 꺼내놓은 후, 네가 와서 든든하다고 고맙다며 대뜸 앞치마부터 건네준다. 집에서 민사린에게 눈총을 받았던 무구영이 자신도 일을 하겠다며 나서자 시어머니는 선을 긋는다. "네가 뭘 할 줄 안다고 저기로 가있어."

 

'저기'는 시아버지와 작은 아버지가 술판을 벌이고 있다. 민사린과 무구영이 함께 제사 준비를 도우려 마음먹고 왔지만 시월드는 두 사람을 찢어 놓는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는 어서 와 술 한 잔 하자 하고,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부엌으로 아들은 '저기'로 가라 선을 긋는다.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자 급기야 시어머니의 한 마디가 쐬기를 박는다. "여기 너 있어도 도움 안 되거든? 사린아 구영이 저기로 보내라." 그 말에 민사린은 어쩔 수 없이 그 상황을 받아들인다.

 

명절이나 제삿날 흔한 시월드의 풍경. 남자들은 둘러 앉아 술을 마시고 여자들은 부엌에서 해도 해도 티도 안 나는 일을 하는 그 이상한 풍경을 작은 아버지의 손녀딸이 스케치북에 담는다. 한 사람 한 사람 그려 이름을 적어 넣는 아이. 이 순수한 아이의 눈에는 제삿날의 풍경은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시어머니는 민사린이 혼자 독박 노동을 하는 것이 안쓰럽다는 듯 큰 며느리가 이제 산달이라 그렇다는 말로 위로한다. 그러자 작은 아버지가 맞장구라고 쳐주는 말이 참으로 이상하다. "그래도 와봐야지. 동서 혼자 고생하는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술상 앞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고생하는 걸 알면 자신들이 도와줄 생각은 안하나? 이들은 제사상을 차리는 일이 당연한 '며느리들의 몫'이라 생각한다.

 

제사가 끝나고 나온 민사린은 그날의 불편함과 언짢음을 남편에게 토로하지만 남편은 자신도 힘들었다고 변명한다. 어르신들의 요구에 따라준 것이 마치 아내를 위한 일이었다는 식으로 말한다. 결국 화가 난 민사린이 홀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을 때 맏며느리 정혜린(백은혜)에게서 전화가 온다. 뮤지컬에 관심이 있으면 표를 주겠다는 말에 민사린은 그것이 제삿날 그가 오지 못한 것 때문에 미안해서 그런 거라면 신경 안 써도 된다고 한다. 하지만 정혜린은 제사 때문에 민사린에게 미안한 일은 없다고 분명히 한다. 그 일이 며느리들이 나눠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드라마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 당연하게 여겼던 제삿날 풍경을 그걸 스케치북에 담았던 아이의 순수한 눈으로 있는 그대로 그려놓는다. 그 그림 안에는 무남천(김종구), 무남해, 무구영이라 이름이 적힌 남자들이 한쪽 편에 그려져 있고, 시어머니이자 며느리인 박기동(박하선)과 민사린이 다른 한 편에 그려져 있다. 무씨 집안 제사에 정작 지들은 노동에서 쏙 빠져 술판을 벌이고, 며느리들만 일하는 생고생하는 이상한 풍경. 아이는 그 그림을 민사린에게 준다. 그건 아마도 아이의 눈에도 가장 고생하는 이가 누구인가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이 땅의 며느리들이라면 폭풍 공감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사진:카카오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