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아카이브K', 발라드·댄스·인디까지 아우르는 음악 예능의 가치 본문

옛글들/명랑TV

'아카이브K', 발라드·댄스·인디까지 아우르는 음악 예능의 가치

D.H.Jung 2021. 2. 8. 15:08
728x90

'아카이브K', 일회적 방송으로는 아까운 소장 가치 음악 예능

 

발라드편을 2회로 구성하며 이문세부터 변진섭, 신승훈, 조성모에 이어 백지영, 이수영, 임창정, 김종국, 성시경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보여줬을 때, SBS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이하 아카이브K)>라는 다소 거창한 야망(?)이 엿보이는 프로그램은 기대 반 아쉬움 반이었다. 이른바 K팝이 글로벌하게 인기를 끌고 있는 현재까지 우리네 가요사를 제대로 아카이브 관점에서 다룬 프로그램을 보기가 어려웠다는 점에서 반가운 기대가 반이었다면, 그 짧은 시간에 1990년대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발라드의 계보를 완벽하게 그려낸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을 수 있다는 아쉬움이 반이었다. 

 

하지만 3회에 1990년대 나이트 DJ와 댄스음악의 계보를 그려나가는 부분과 4회에서 이태원 미군 전용 클럽 문나이트를 중심으로 풀어낸 춤꾼들의 이야기는 <아카이브K>가 가진 진정성과 가치를 느끼게 만들었다. 사실 그토록 많이 들려졌던 90년대 댄스음악들이지만, 이 음악들의 가치를 이렇게 체계적으로 담아낸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나이트클럽의 DJ들이 주축이 되어 직접 노래를 만들고 가수 활동을 하기도 하고 다양한 가수들을 발굴해내기도 했던 그 시대의 풍경은 어쩌면 지금의 K팝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결과물이 아니라는 걸 고스란히 보여줬다. 

 

게다가 만화가 김수용이 그렸던 <힙합>의 실제 무대였던 문나이트를 중심으로 현진영은 물론이고 양현석, 이현도, 김성재, 구준엽, 강원래 같은 춤꾼들이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다룬 이야기나, 이들에 의해 시작된 이른바 블랙뮤직의 흐름을 찾아가는 대목도 흥미로웠다. 흔히들 음악사를 다루거나 혹은 가요의 레전드를 말하면, 대형가수들 중심으로 풀어냄으로써 사실상 소외되기 마련이었던 댄스 음악 같은 장르들을 <아카이브K>가 제대로 맥락을 짚어 조명해주고 있어서였다. 

 

5회에 방영된 '홍대 앞 인디뮤직'편도 마찬가지다.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이라는 대중적인 인디밴드의 탄생 뒤에 존재하던 클럽 '드럭'이 소개되고, 우연찮게 땜빵으로 토요일 무대에 섰다가 황인뢰 감독의 제안으로 OST를 내놓으면서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른 자우림의 마치 영화 같은 스타탄생의 과정이 담겨진다. 펑크락을 하던 크라잉넛과 노브레인과는 사뭇 다른 모던락을 시도했던 밴드들이 소개되고, 그 밑바탕에 PC통신이라는 새로운 미디어 소통 방식이 존재했다는 걸 짚어낸다. PC통신 음악동호회를 중심으로 탄생한 델리 스파이스와 언니네 이발관 같은 밴드가 그들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너무나 짧은 시간 안에 어느 한 장르의 계보를 모두 담아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소개되지 못한 많은 아티스트들이 존재한다는 건 아쉬울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발라드에서부터 댄스음악, 인디 등 다양한 음악장르들을 한 프로그램에서 아카이브 형식으로 담아낸다는 그 의도 자체가 박수 받을 만한 일이다. 그건 K팝으로 현재 통칭되곤 있지만 사실상 아이돌 음악 정도가 우리네 가요가 가진 유산의 전부인 양 보이는 것에 대한 전복의 의미가 거기 자연스럽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K팝이라는 하나의 지칭이 생겨나기 전 무수히 많은 아티스트들이 존재했고 현재도 그러하다는 걸 <아카이브K>는 에둘러 말해준다. 그래서 겨우 10회 분량으로 제작된 <아카이브K>는 이처럼 일회적인 방송으로 끝내긴 너무나 아까운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애초 '아카이브K'라는 거창한 목표를 제시한 만큼, 좀 더 지속적인 '사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시즌제라는 좋은 형식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매년 새 시즌으로 우리네 가요사의 다양한 부분들을(혹은 지나간 것 중 빼놓은 것들까지 망라해) 조명하고 채워 넣는다면 그건 우리네 대중문화사에 있어서 실질적인 자산(아카이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사진: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