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괴물' 이 땅의 투기꾼들에게 던진 경고, 거기에 사람이 있다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괴물' 이 땅의 투기꾼들에게 던진 경고, 거기에 사람이 있다

D.H.Jung 2021. 3. 2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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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신하균에서 이규회·천호진까지 모두 괴물로 만든 건

 

모두가 괴물 같다. 아마도 범죄 스릴러에서 누가 범인일까 하는 건 가장 중요한 드라마의 힘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JTBC 금토드라마 <괴물>은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이들이 괴물처럼 보이는 드라마다. 그건 그만큼 이 범죄 스릴러의 동력이 멈추지 않는다는 걸 말해준다.

 

처음에는 이동식(신하균)이 괴물처럼 보였다. 20년 전 실종된 여동생을 찾기 위해 거의 미쳐버린 형사. 마침 외사과에서 만양파출소로 내려온 이 자그마한 동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주원 경위(여진구)는 이동식을 범인이라 끝없이 의심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의심이 맞는 것처럼 이동식이 실종된 만양슈퍼 강진묵(이규회)의 딸 강민정의 잘려진 손가락 열 개를 슈퍼 앞 평상에 가지런히 내려놓는 장면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준다.

 

이러니 이동식이 괴물이라 확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드라마는 이내 강민정을 죽인 범인이 그의 아빠인 강진묵이었다는 걸 드러낸다. 시청자들은 오리무중에 빠져버리지만, 그것이 강진묵을 통해 그가 숨겨 놓은 사체를 찾으려는 이동식의 큰 그림이었다는 게 밝혀진다. 결국 연쇄살인을 벌이고 사체들을 곳곳에 묻어버린 괴물이 바로 강진묵이었다는 게 확실해진다.

 

하지만 16부작 드라마에 고작 8회 만에 괴물이 밝혀졌다는 건 어딘지 찜찜함을 남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국 범인은 강진묵만이 아닌 또 다른 인물이 있다는 게 그가 자살하며 남긴 '유연이는 아니야'라는 글귀를 통해 명확해진다. 그리고 강진묵이 20년 전 집을 나간 아내 윤미혜를 찾아다녔고, 그가 찾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같은 윤미혜의 친구인 방주선은 물론이고 업소에서 일하던 많은 여자들을 죽였다는 걸 알아낸다. 그가 강민정을 죽인 것도 20년 동안이나 찾아 헤맨 윤미혜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이었다. 기분이 좋지 않던 그를 민정이 자극했고 결국 살해하게 된 것.

 

이렇게 보면 강진묵이라는 인물의 연쇄살인은 아내 윤미혜와 관련되어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데 이동식의 여동생인 유연이는 아니라며, "유연이는 내가 너한테 돌려줬거든.."이라는 말은 또 다른 범인이 있고, 그 범인이 누구인지를 강진묵이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결국 이동식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자신의 집 벽 속에서 유연이의 사체를 발견한다.

 

그리고 갑자기 자살하게 된 강진묵을 방조한 혐의로 남상배 파출소장(천호진)이 긴급체포된다. 강진묵이 암시한 또 다른 범인이 그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만들어지고, 실제로 강진묵이 자살하던 날 누군가 유치장을 찾아와 그에게 낚시줄과 윤미혜의 시체 검안서를 건네줬고, 그 날 남상배가 그 곳에 들어가는 걸 유재이(최성은)는 목격한다.

 

한 걸음 뒤편에 있었지만 남상배는 어딘가 이상했던 인물이다. 마을 사람들을 챙기는 것처럼 보이고, 심지어 이동식이 슈퍼 평상 앞에 잘려진 손가락을 놓는 장면이 찍힌 CCTV를 지웠던 인물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의 숨겨진 과거는 유재이의 모친이자 실종된 한정임의 첫 사랑이었다는 사실이다. 과연 그가 숨겨진 또 다른 범인일까.

 

<괴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나 같이 괴물처럼 보이고 무언가 자신들만의 비밀을 간직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이 범죄스릴러를 끝까지 쫄깃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런데 이렇게 괴물로 보이는 이들은 모두 저마다 실종된 이들을 애타게 찾는 인물들이다. 유연이를 20년간 찾아온 이동식은 물론이고, 연쇄살인범이었던 강진묵도 집 나간 윤미혜를 20년간 찾아 헤맨 인물이다. 그리고 아마도 남상배 역시 사라진 첫사랑 한정임을 찾아 헤매지 않았을까.

 

실종된 인물을 수십 년 간 찾아 헤맨 자들이라는 상황은 이들의 이상한 행동들조차 납득하게 만든다. 저 정도의 절박함이라면 저런 '미친 짓'도 하게 될 것이라는 공감이 생기는 것. 그래서 <괴물>의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괴물 같은 느낌을 주고, 그것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로 만들어질 수 있는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괴물>은 이런 괴물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로 무얼 말하려는 것일까.

 

그건 아무래도 이 낙후되어 있는 변두리라는 공간과, 심지어 사람이 계속 실종되어도 그 누구도 찾지 않는 그 공간의 쓸쓸함과 소외가 어떤 괴물들을 만들어내는가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개발, 부동산 같은 투기적 목적으로만 바라보는 땅 속에 사라져버린 사체들이 나온다는 건 그래서 강렬한 비판의식을 담아낸 은유처럼 읽힌다. 거기 사람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니까.(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