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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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국민 예능과 매니아 예능 사이

D.H.Jung 2008. 8. 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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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좀비편, 그 실패의 이유

몇 주 전부터 방영된 티저 영상만으로도 ‘무한도전’좀비편은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일단 그 소재가 참신했다특집이면 통상적으로 등장하는 흉가체험 같은 틀에 박힌 소재들에서 벗어나 대니 보일 감독의 좀비영화 ‘28일 후’를 패러디 했다. 이 색다른 소재에 버라이어티쇼를 접목했다는 점은 실로 ‘무한도전’의 도전정신이 아니고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시도일 것이다. 다름 아닌 이러한 실험성이 ‘무한도전’의 신화를 만든 이유이기 때문이다.

‘나는 전설이다’로 최근 리메이크된 리차드 메드슨의 소설에서부터 비롯된 좀비 컨텐츠들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만들었던 조지 로메로 감독에 의해 정착되었고, 80년대 들어서는 ‘이블 데드’같은 영화들로 변주되었으며, 한때 침체기를 겪다가 최근 들어 ‘레지던트 이블’, ‘28일 후’, ‘나는 전설이다’ 같은 영화들로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중요한 것은 공포 영화 자체가 영화의 주류는 아닌데다가 특히 좀비라는 소재는 그 중에서도 매니아적인 소재라는 점이다.

좀비 컨텐츠는 그 계보를 꿰뚫고 있던가, 적어도 좀비라는 존재의 탄생, 특징 같은 것들을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반복되는 설정들, 예를 들면 특정한 바이러스의 유출과 그로 인한 변종의 탄생, 점점 불어가는 변종들, 이와 맞서는 몇 안 되는 생존자들 같은 상황들이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 컨텐츠들은 계보 속에서의 패러디를 통한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즉 어떤 식으로든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사전 학습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무한도전’ 좀비편이 실험성은 뛰어나지만 시청률면에서 저조했던 이유는 당연하다. 그 소재 자체가 대중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바로 이 점 때문에 매니아들은 그 시도 자체에 열광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실험은 기획단계부터 무리한 점이 없잖아 있었다. 그것은 영화라는 장르와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장르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는 허구이지만,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리얼리티를 추구한다. 좀비 컨텐츠는 만들어진 가상의 것으로 그것이 재미를 주기 위해서는 철저한 대본에 의한 구성이 필요하다. 좀비의 존재 그 이상으로 필요한 것은 그들에게 쫓기는 인물들의 내적 갈등(가까운 사람이 좀비가 된다든지 하는)이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이것을 인위적으로 만들기란 불가능하다. PD가 계산한 함정 속에 인물들이 정확히 빠져 허우적댄다고 해도 그것은 너무 짜여진 느낌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무한도전’ 좀비편이 가진 한계가 있다. PD가 계산한대로 함께 움직이지 않고 이기적인 행동을 보인 박명수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자신이 해야될 역할을 정확히 한 것이지만, PD가 예상한 좀비 컨텐츠 속에서는 그것을 망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창대한 기획이 허무한 결과로 이어진 것은 바로 이런 리얼 버라이어티의 예측불가능성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이 소재가 강행된 것은 ‘무한도전’만이 가진 특성을 드러내준다. 그것은 특유의 실험정신이 가진 이중적인 모습이다. 좀비편이 보여준 것은 ‘무한도전’만이 갖고 있는 국민예능다운 면모의 선구적인 실험성과, 또한 한편으로 그 낯설음이 가져오는 매니아적 속성의 이중성이다. 이것은 그 실험적인 정신이 때론 ‘무한도전’을 ‘무모한 도전’으로 만들어버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예능으로의 길과 매니아예능으로의 길 그 어느 것도 포기하기 어려운 것, 이것이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전설을 꿈꾸는‘무한도전’이 가진 딜레마이자 넘어야할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