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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세상

한 번 보면 밤새울 ‘소년심판’, 김혜수는 역시 넘사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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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심판’, 분노하다 아파하다 먹먹해지는 웰메이드의 탄생

소년심판

“소년 사건은 해도 해도 적응이 안돼. 늘 찝찝하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심판>에서 심은석 판사(김혜수)는 차태주 판사(김무열)에게 그렇게 말한다. 이건 아마도 <소년심판>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이 드라마가 다룰 ‘소년 범죄’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시청자들이 가진 양가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게다. 

 

이제 겨우 13세의 나이에 8세의 초등생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 유기했다고 경찰서 앞에 나타나 흉기로 썼다는 피 묻은 도끼를 꺼내 보이며 자수를 하는 <소년심판>의 첫 번째 사건의 도입 부분에서부터 이런 불편한 감정이 피어오른다. 이걸 소년 사건이라고 치부해 소년법에 따라 솜방망이 처벌을 해도 될 일일까. 그렇다고 어린 소년을 교화가 아닌 처벌의 대상으로 삼아 어른들과 똑같은 살인죄에 해당하는 처벌을 내리는 건 괜찮은 일일까. 

 

사실 <소년심판>은 이러한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소년 사건들을 우리 앞에 꺼내놓는다는 점에서 어딘가 불편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만 가득한 건 아닌가 하는 선입견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건 선입견일 뿐이다. <소년심판>은 불편한 사건들을 다뤄 어떤 분노의 감정들을 느끼게 하지만, 그걸 단지 심판하고 단죄하는 단순한 방식의 사이다를 추구하는 드라마도, 또 그렇다고 답답한 고구마 현실만을 꺼내놓는 드라마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조금 멀리 놔두고 있어서 막연히 불편하게만 느꼈던 이 문제를 좀 더 가깝게 보게 해주고 거기서 이 심은석이라는 판사의 행보를 통해 어떤 대안들까지 생각하게 해주는 드라마다. 게다가 이 심은석 판사는 “저는 소년들을 혐오합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냉정한 인물이다. 판결의 대상이 소년이라고 해서 감정적으로 휘둘리는 판결을 내리거나 하지 않는다. 물론 그 이면에는 어딘가 상처가 존재하고, 그래서 그것을 가리기 위해 결코 웃지 않는 냉정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따뜻한 판사. 그가 바로 심은석이다. 

 

최근 법정을 다루는 드라마들이나 혹은 범죄 스릴러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촉법소년’이다. 하지만 그런 드라마들이 ‘촉법소년’이라는 법을 오히려 이용하는 잔인한 소년범죄를 자극적으로 끄집어내는 정도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았다면, <소년심판>은 그보다 더 깊숙이 문제의 본질을 파고 들어간다. 현실에서 마주하는 해당 판사들의 고민이 숙고되어 있고, 이를 촘촘히 취재해 드라마적 재미와 함께 잘 녹여내려는 작가의 고민도 느껴진다. 

 

소재가 주는 불편한 선입견을 잠시 접어두고 일단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이 있는 드라마다. 그 몰입감은 작가가 이 진지한 문제를 가져오면서도, 매력적 캐릭터들을 창조하고 드라마틱한 구성을 더해 가능해진 일이다. 심은석 판사라는 캐릭터와 이를 연기하는 김혜수는 그래서 이 작품의 기둥이라고 해도 될 법한 존재로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 캐릭터에 몰입해 분노하고 속 시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슬퍼하다가 때론 먹먹해지는 그 감정들을 가이드해주는 장본인이다. 

 

엄청난 카리스마로 부장 앞에서도 결코 굽히는 일이 없는 이 심은석 판사의 냉정하고 대쪽같은 모습은, 그와 함께 사건에 뛰어드는 너무나 따뜻하고 아이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려 애쓰는 차태주 판사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면서 이 논쟁적인 이야기에 균형감각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에피소드도 시작에는 강력한 살인사건으로 먼저 시선을 잡아 끌지만, 그 이후에는 그런 소년 범죄가 벌어지게 되는 이유로서의 가정폭력 에피소드가 전개되고, 그 다음에는 이런 소년들을 보호하고 보살피는 사회의 안전망으로서의 보호센터가 가진 현실적 문제를 다룬 에피소드로 나아간다. 

 

즉 단순한 에피소드 나열이 아니라, 소년범죄에 대해 보다 입체적이며 심층적인 사안들로 에피소드들이 전개됨으로써 이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4회와 5회에 걸쳐 청소년 회복센터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와 거기서 센터장이 하는 대사는 이 드라마의 이런 깊이 있는 접근을 잘 보여준 사례다. “집에서 상처받으면 아이들은 자신을 학대해요. 평소에는 안했을 범죄를 저지른다거나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는 식으로. 본인들도 알아요. 하면 안 된다는 거. 알면서 하는 거죠. 나를 학대하는 게 내 고통이 가정에도 상처가 되길 바라면서. 나 좀 봐 달라고, 나 힘들다고, 왜 몰라보냐고. 사실 대부분 비행의 시작점은 가정이거든요.”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소년들이 하는 행동들이나 말은 분노할 수밖에 없는 폭력에 가까운 것들이지만, 그 이면을 파고 들여다보면 거기 드리워져 있는 부모들의 무관심과 심지어 폭력의 그림자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건 부모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보듬어야할 문제들도 존재한다. 심은석 판사는 사실상 국가의 지원에 의해 된다고는 해도 결국 어떤 개인의 희생이 담보된 청소년 회복 센터 같은 시설들에 소년들이 맡겨지는 것의 실체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그걸 바꿔 말하면 국가가 해야 될 일을 오직 개인의 희생에 기대고 있다는 뜻이 되는 거고. 그런 의미에서는 법원도 유죄야.”

 

한 번 보면 밤 새워 몰아볼 수밖에 없는 몰입감을 주는 독보적인 캐릭터와 깊은 취재에서 나오는 에피소드 그리고 작가의 만만찮은 필력이 더해진 극적 구성. <소년심판>은 보면서 참 다양한 감정들이 파도처럼 몰아닥치는 경험을 통해 ‘소년범죄’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보게 해주는 웰메이드 드라마다. 작품도 좋지만 김혜수의 연기는 역시 넘사벽이다. 그의 대사 하나 행동 하나에 긴장하며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느껴지니 말이다.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