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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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세상

더럽고 서러운 ‘대외비’, 현실 정치에 대한 신랄한 냉소

D.H.Jung 2023. 3. 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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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비’, 희망 따윈 없는 조진웅과 이성민의 정치판 ‘파우스트’

대외비

“본래 세상은 더럽고 인생은 서러운 기다.” 영화 <대외비>에서 정치판의 비선 실세 순태(이성민)가 공천이 취소되어 억울해하는 해웅(조진웅)에게 던지는 그 말은 이 작품이 보는 정치에 대한 시선이 담겨있다. 그 시선은 지독하게 냉소적이다. 이 판에 발을 딛는 순간, 국민과 대중을 향한 최소한의 소신도 무너지고 결국은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 

 

번번이 선거에서 떨어졌지만 이제 부산 해운대에서 공천이 내정된 국회의원 후보 해웅은 이 작품이 그리는 ‘문제적 인물’이다. 그는 소신과 대의를 갖고 있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부산은 물론이고 전국 정치판을 쥐고 흔드는 비선실세 순태를 보좌하며 머슴 역할을 자임해온 지극히 현실적인 욕망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게 선하기만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악하다고 보기도 어려운 이 인물이 변하기 시작하는 건 공천이 취소되면서다. 총선에 이어질 대선 비자금 마련을 위해 해운대 재개발 계획이 은밀히 이뤄지고, 이를 진행하게 된 순태는 지역 주민들을 위해 재개발 반대를 외치는 해웅의 공천을 취소한다. 순태에게 토사구팽 당한 해웅은 소신과 대의 대신 어떻게든 권력을 쥐겠다는 욕망 속으로 빠져든다. 재개발 계획이 담긴 대외비 문서를 입수한 해웅은 재개발 반대의 소신도 접고 그 이권을 미끼로 조폭과도 손을 잡고 선거자금을 조달해 무소속으로 선거에 나선다.  

 

결국 <대외비>는 정치판과 또 거기 연결된 이권을 두고 해웅과 순태가 치고 받는 대결의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담는다. 의외로 해웅이 선전을 하기도 하지만 이를 다시 순태가 뒤집고 그러면 다시 해웅이 나서서 순태의 뒷덜미를 잡는 식이다. 이 과정 속으로 들어가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치의 대의나 민주주의 같은 이야기들은 공염불이 되어버린다. 대신 치열한 이전투구의 장이 정치이고, 그것은 심지어 무고한 민초들의 삶조차 권력을 위해 빼앗는 ‘악마와의 거래’라는 게 그 과정이 담고 있는 것들이다. 

 

‘The Devil’s Deal’이라는 영문 제목에 담겨 있듯이 <대외비>가 그리고 있는 건 정치라는 외피를 쓰고 있는 ‘악마와의 거래’다. 그것은 순태의 대사로도 나오는 데, 정치라는 게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일”이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그래서 이원태 감독이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했듯, 이 작품 속 순태와 해웅은 마치 <파우스트>의 메피소토펠레스와 파우스트를 연상케 한다.

 

순태와 해웅이 극한의 대결구도 속에서 한 허름한 주점에서 마주한 채 서로를 향해 패를 꺼내드는 장면은 진짜 <파우스트>의 한 장면처럼 연출되었다. 한 명이 교차 편집되어 클로즈업 된 얼굴만으로도 이 악마와의 거래가 실감되기 때문이다. 순태는 악마의 눈빛으로 해웅을 죽음의 공포 속으로 밀어 넣고는 패를 내밀고, 해웅은 극도의 긴장감에 땀을 줄줄 흘려가며 떨면서도 자신의 패를 내민다. 사실 이 한 장면이 이 영화의 모든 걸 담았다고 할 정도로 인상적인 대목이다. 

 

그리고 그렇게 패를 나눈 후의 결과는 충격적이다. 정치판은 어떤 식으로든 타협을 하거나 협상을 했을 테지만 이원택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그 엔딩은 말해준다. 흔히들 빌런들이 등장하는 이런 영화 속에서 권선징악, 사필귀정을 꿈꾸지만, 이 영화는 애초 이상적인 정의나 정치라는 것이 순진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영화가 굳이 1992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작품 속에도 등장하지만 당대는 87년 민주화운동에 이은 6.29 선언으로 직선제에 의해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집권한 후 시간이 흘러 차기 대선이 벌어지던 시기다. 선거에 있어 불법과 부정을 근절하겠다고 정부가 나섰지만 여전히 금권선거와 부정선거가 횡행했던 시기라는 것. 

 

그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당대를 추억하게 만드는 레트로적 감성이 시선을 잡아끄는 면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영화가 그 때를 소환해낸 건 그런 정치가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현재는 달라졌는가를 오히려 질문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지금의 정치판을 보라.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 당시 그토록 쏟아져 나왔던 ‘민생’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정치는 끝없는 권력 대결과 이전투구의 장이 되어 있다. 

 

영화는 끝내 희망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악마와의 거래를 통해 권력을 쟁취한 이들이 그 거래로 인해 끝없이 저들과 손잡아야 하고, 거기에 더 이상 순수한 정치나 민주주의의 이상 같은 것들은 존재할 수 없어지는 절망을 보여준다. 그 절망에서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정치판이 겹쳐지는 건 지나친 해석일까. 

 

어둡고 그래서 비밀로 감춰져 있지만 이 <대외비>를 끝내 마주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래서 충분하다. 그 비밀이 비밀로 남겨져 있는 한 거래는 계속 일어날 것이고, 그만큼 세상은 더러워지고 민초들의 삶은 서러워질 것이며, 그럴수록 희망은 찾을 수 없을 테니.(사진:영화'대외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