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송혜교 괴롭히는 새 고데기, 너무 현실적이라 소름 돋는다(‘더 글로리’) 본문

동그란 세상

송혜교 괴롭히는 새 고데기, 너무 현실적이라 소름 돋는다(‘더 글로리’)

D.H.Jung 2023. 3. 5. 19:57
728x90

‘더 글로리’ 파트2, 송혜교를 괴롭히는 새 고데기에 담긴 참혹한 현실

더 글로리 파트2

“성공했네. 박연진. 나를 상대할 새 고데기를 두 개나 찾았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2에서 문동은(송혜교)이 던지는 그 대사는 이 드라마의 후반전의 뜨겁게 타오를 화력을 예감케 한다. 고데기와 문동은의 온 몸에 남아있는 지워지지 않는 화상자국은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폭력의 시스템의 중요한 상징들이다. 머리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쓰는 고데기를 저들은 약자들의 온 몸에 상처를 내는데 쓰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 

 

“난 잘못한 게 없어 동은아. 왜 없는 것들은 세상에 권선징악, 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 박연진의 대사로 등장하는 이 말이 바로 저 가해자들의 뻔뻔한 입장이다. 하지만 문동은의 온 몸에 남은 화상자국이 그러하듯이, 피해자들은 그 상처를 평생 지고 살아간다. 심지어 죽고 싶을 만큼. 문동은은 그래서 저들을 향한 복수의 길을 마치 바둑을 두듯 차근차근 상대의 집을 무너뜨려가며 걸어가지만, 박연진도 만만하지 않다. “네 X을 상대할 고데기를 찾을 것”이라고 했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박연진이 찾아낸 두 개의 새 고데기는 문동은의 엄마와 그의 든든한 조력자 현남(염혜란)이다. 이미 어린 문동은을 박연진의 엄마가 준 돈 몇 푼에 합의서를 써준 후 버렸던 문동은의 엄마다. 그런 그를 이제 박연진이 찾아와 돈을 주며 문동은을 학교에서 떠나게 만들라고 한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끔찍한 엄마가 다시 찾아오자 문동은은 분노한다. 과거의 상처와 악몽이 또 다시 현재에 되살아난다. 

 

또한 박연진은 현남을 찾아와 그의 딸을 빌미로 협박한다. 딸의 인생을 망가뜨리겠다는 것. 그러면서 현남을 회유해 문동은을 배신하라고 획책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문동은은 괴롭다. 자신이 믿고 함께 하는 조력자가 자신의 복수 때문에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게 됐기 때문이다. 두 개의 새 고데기는 그렇게 다시 박연진의 손에 들려 문동은을 향해 드리워진다. 

 

온라인 시사회를 통해 미리 공개된 파트2의 2회분 내용을 보면 <더 글로리>의 후반전이 문동은과 박연진의 치고받는 대결로 치열해질 것인가를 예감케 한다. 여기서 가장 소름 돋는 설정은 가해자의 ‘새 고데기’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학교폭력 같은 과거의 폭력 전과가 어떻게 사라지지 않고 계속 다시 새로운 고데기가 되어 피해자를 괴롭히는가에 대한 서사가 들어 있어서다. 

 

물론 <더 글로리>에서 새 고데기는 박연진이라는 최강 빌런이 끝내 찾아내는 ‘악의 성실함(?)’에서 등장하는 것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가해자들의 새 고데기는 그들이 처벌받지 않고 심지어 버젓이 잘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피해자들을 괴롭힌다. 최근 자녀의 학교 폭력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가수사본부장에서 사퇴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은 단적인 사례다. 

 

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사실이 기재되어 있었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서울대에 입학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얼마나 부조리한가를 드러낸다. 서울대생들의 분노가 폭발한 건 그래서다. 당시 피해자가 자살 시도에 이르게 할 만큼 심각한 피해를 입었는데, 학교폭력에 대해 경각심이 없는 입시, 인사 시스템은 그 자체로 또 다른 고데기가 아닐까.

 

최근 MBN <불타는 트롯맨>에서 과거 폭력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하차하지 않고 활동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가 쏟아지는 비판 속에 결국 하차를 결정한 황영웅과 제작진에 쏟아졌던 공분도 같은 것일 게다. 피해자는 여전히 상처를 잊지 못하고 있는데, 이러한 처사는 새로운 고데기를 드리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을 소재로 가져왔지만, 그 폭력의 이면에 존재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시스템과 그래서 돈과 권력을 가진 가해자가 더 잘 살고, 약자인 피해자는 더 힘겹게 살아야 하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저격하는 드라마다. 성실한 악은 아니라고 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정의는 그 자체로 피해자들에게는 새 고데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더 글로리>는 에둘러 말해준다. 

 

만일 죄지은 자들이 처벌받는 정의가 작동했다면, 문동은 같은 피해자가 왜 스스로 나서서 사적 복수를 하려하겠는가. 그건 복수가 아니라 새 고데기가 여전히 드리워진 삶으로부터의 생존의 몸부림이 아닐까. 오는 10일 후반부 전편이 공개되는 <더 글로리> 파트2는 이 첨예한 새 고데기와 맞서 싸우는 피해자들의 연대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박연진의 말과 달리 이 세상에는 권선징악과 인과응보가 있다는 걸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보여주길.(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