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고’, 이서진이 깃든 윤찬영의 인생2회차에 대한 기대감
뻔할 것 같은데 의외로 화력이 좋다? 티빙, 웨이브, 왓챠에서 공개되고 있는 ‘조폭인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이하 조폭고)’의 반응이 의외로 괜찮다. 사실 소재나 내용을 보면 새로울 건 별로 없어 보이는 작품이다. 조폭의 영혼이 사고로 한 왕따 고등학생의 몸에 빙의되어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룬 학원액션물이다.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예상하는 게 어렵지 않다.
그래서 ‘아는 맛’이지만 바로 이 아는 맛이 주는 효능감이 적지 않다. 고등학생의 몸에 조폭의 영혼이 겹쳐지면서 생겨나는 코미디는, 학생과 조폭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과 더불어 학생과 아저씨라는 세대의 결합에서도 나온다. 학생인데 거의 조폭급으로 싸움을 잘하고, 조폭이지만 학생이라는 본분을 지키려 하고 공부를 가장 무서워하는 모습이 그렇고, 겉모습은 고등학생이지만 입맛부터 취향까지 아재인데다 MZ세대들이 하는 말들을 알아듣지 못해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 그렇다.
하지만 이 송이헌(윤찬영)이라는 학생이 학교폭력을 당하던 왕따였다는 사실은 조폭 김득팔(이서진)의 영혼이 빙의된 후 벌어지는 반격들에 통쾌한 사이다 액션들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런데 여기에 액션만큼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는 건 김득팔이 빙의되어 송이헌의 인생 자체를 재설계하는 과정이 주는 판타지다. 이 부분은 그래서 ‘인생2회차’가 주요 콘셉트로 그려지곤 하는 회귀물의 냄새가 풍겨난다.
회귀물 판타지가 커지려면 이전 생(?)이 갖고 있는 문제들이 적지 않아야 한다. 김득팔이 빙의되기 전 송이헌의 삶은 문제투성이다. 그간 친구 하나 없는 왕따인데다, 한때 하이틴 스타였지만 재벌가의 사생아로 이헌을 낳고 인생이 꼬였다며 술에 취해 살아가는 엄마(이희진)는 물론이고, 그 엄마가 혹여나 유산이라도 상속 받을까봐 조폭까지 동원해 제거하려는 이미경(황보라) 같은 위협도 존재한다.
다행스러운 건 송이헌에 빙의된 김득팔은 조폭이긴 해도 지킬 건 지켜야 한다는 소신을 가졌고, 쌓인 문제들도 포기하기보다는 하나하나 풀어나가려는 ‘바른생활 사나이’ 같은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노트에 문제들을 하나하나 적어 본다. ‘학폭에서 벗어나기 완전히. 친구 만들기. 제대로 된 가족 만들기. 대학가기.’ 송이헌이 노트에 적은 이 문제들은 향후 이 드라마가 풀어갈 내용들로, 송이헌의 인생 재설계에 해당한다.
복잡하지도 않고 꼬인 스토리도 없으며 그렇다고 무거운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누구나 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건전한’ 이야기들을 권선징악의 틀에 맞춰 풀어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단순한 서사가 주는 판타지가 적지 않다. 너무 많은 학원물들이 나오면서 그 폭력의 표현 수위도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지만 이 작품은 명랑하고 유쾌한 선을 지킨다. 또 어른들의 세계와 얽히는 사건들도 그리 복잡하지 않다. 송이헌이 최세경(봉재현)과 보여주는 우정서사는 마치 BL처럼 달달하게 다가오고, 한때는 일진으로 송이헌을 괴롭히는 인물이었지만 어쩐지 점점 가까워지는 홍재민(주윤찬)과의 관계 진전도 흥미롭다.
여기에 김득팔이 죽은 후에도 여전히 ‘형님’으로 생각하며 따르는 동수(원태민)와 종철(고동욱)이 이제 송이헌의 엄마를 납치하려 하면서 얽히게 되는 송이헌과의 이야기도 기대되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과연 김득팔이 빙의되어 송이헌이 만들어내는 인생2회차는 어떤 방식으로 완성되어갈까. 뻔해 보이는 설정처럼 보이지만 회귀물이 주는 그 판타지의 선명한 기대감이 ‘조폭고’가 의외로 화력이 좋은 이유다. (사진:넘버쓰리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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