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은 학원강사를 미화하지도 교사를 비하하지도 않았다
“난 서혜진 선생 그런 부분이 참 좋아요. 자기 밥그릇이 걸린 문제에선 망나니처럼, 미안합니다, 투사처럼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고 싸움에서 이기고 난 다음엔 갑자기 도덕책을 읊어대는 그런 뻔뻔함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죠. 참 욕심나는 사람이에요.” 표상섭(김송일) 선생님이 학교까지 그만두고 최선국어 부원장이 된 이유를 묻는 서혜진(정려원)에게 최형선 원장(서정연)은 한껏 비아냥을 쏟아댄다.
표상섭은 오답 문제 때문에 서혜진이 학교까지 찾아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망신을 줬던 인물이었다. 고집스럽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서혜진을 포함해 학원강사들을 “기생충”이라고까지 이야기했던 인물이다. 또 결국 서혜진 뜻대로 오답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표상섭은 도저히 “선생님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학원강사들을 혐오하는 입장을 드러냈다. 그래서 그 후에는 오히려 서혜진을 필두로 한 학원강사들과 저 혼자만의 싸움을 시작한다. 교과서 안에서만 시험문제를 출제한다고 고집을 피우고, 그건 결국 동료 선생님들에게 민폐로 돌아간다. 시험문제가 변별력이 없어, 학생들 등급을 세우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랬던 표상섭이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고 서혜진이 최고의 제안을 받고도 고사했던 최선국어 부원장으로 왔던 것이다. 알고보니 표상섭은 서혜진으로 인해 학교선생님으로서 완전히 망가졌고, 소신도 무너져버렸다. 학교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어졌고, 마침 최형선의 스카웃 제의를 받아들이고는 이제 완전히 학원 선생으로서의 길을 선택한 거였다. 서혜진을 찾아온 표상섭은 이제 그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자신도 동류가 되었음을 알려준다.
그 일은 서혜진에게 큰 충격을 준다. 자신이 했던 행동들이 학교에 남아있어야 될 선생님을 학교 바깥으로 내몬 결과로 이어졌다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최형선을 찾아와 그 부원장 자리를 지금이라도 맡겠다며 표상섭 선생님이 있어야 할 자리는 학교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서혜진에게 최형선은 지독할 정도로 정확한 지적을 한다. 최형선의 지적은 서혜진이 스스로도 인정하기 싫은 자신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리는 것이었다.
최선국어 부원장 자리를 고사하는 이유로 제안조건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찾아온 학생 시우(차강윤)를 가르치고 싶다고 얘기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최형선은 무슨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인 줄 알았다며 코웃음을 친다. 그러면서 서혜진이 가진 양면적인 모습을 아프게도 꼬집는다. “교육자이자 장사치 그 괴리감을 서혜진 선생처럼 깔끔하게 외면할 줄 아는 사람도 드물죠.” 이 충격적인 최형선의 지적을 서혜진도 아프게 인정하며 이준호(위하준)에게 털어놓는다. “최형선 원장이 왜 최고인 줄 알겠더라.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아주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정리해줬어.”
이 에피소드는 ‘졸업’이 왜 표상섭 같은 인물을 앞부분에 배치해 서혜진과의 한 판을 벌이게 했는지에 대한 이유가 담겨있다. 이 에피소드로 인해 전국의 중증교사노조에서는 공교육 현장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 장면만 놓고 보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우려의 시선이었다. 하지만 10회에 이르러 표상섭이 학교를 그만두고 학원 부원장 자리로 가고, 여기에 충격을 받은 서혜진이 최형선 원장의 날선 비아냥을 통해 자신을 직시하게 된 부분을 보면, 이 작품이 애초 학원강사를 미화하거나 공교육 일선의 교사들을 비하할 의도 자체가 없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최형선의 이야기는 아프게도 서혜진의 진짜 모습 그대로였다. 서혜진은 학원강사로서 성공하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진정한 선생님’이 되고픈 욕망 또한 갖고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그의 첫 제자였던 이준호가 나타나면서 더더욱 커졌다. 그래서 다소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갖게 됐고, 부원장 자리 같은 현실적으로 좋은 조건을 마다하고 한 학생의 스승으로 남겠다는 비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하지만 최형선의 일갈은 결국 서혜진은 학원강사일뿐 선생님이 될 수는 없다는 현실이었다.
또한 표상섭의 선택을 통해 드라마가 하려는 건, 공교육이 치열한 입시경쟁의 현실 속에서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가를 드러내는 것이다. 교육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교과서 위주로’ 하면 된다는 말은 치열한 사교육에 의해 변별력이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지고, 결국 등급을 나누기 위해서는 다시 교과서 바깥에서 시험 문제를 내야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표상섭의 다소 고집스럽게 그려져 심지어 빌런처럼 보이게 만든 건 어찌 보면 그의 선택이 너무나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입시 현실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고 학원으로 나서는 표상섭의 모습은, 우리네 공교육이 처한 위기상황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졸업’이 서혜진이라는 양면의 욕망을 가진 학원강사의 이야기를 통해 담아내려 한 것은 어느 특정 직업군의 비하도 미화도 아닌 우리가 처한 교육 현실의 문제라는 것. 주인공이지만 그저 미화도 비하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드러내려 한 이 지점은, ‘졸업’이 멜로드라마라는 장치를 갖고 오긴 했지만 그 안에 담아놓은 교육의 문제에도 얼마나 치열한 고민을 담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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