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신의 저울’과 ‘프리즌 브레이크’, 그 유사점과 차이점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신의 저울’과 ‘프리즌 브레이크’, 그 유사점과 차이점

D.H.Jung 2008. 9. 5.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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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속의 이야기 vs 법 바깥의 이야기

금요일 밤의 SBS 프리미엄 드라마 ‘신의 저울’은 여러모로 ‘프리즌 브레이크’를 닮았다. ‘프리즌 브레이크’의 마이클 스코필드(앤트워스 밀러)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이제 사형을 앞두고 있는 형을 구해내기 위해 저 스스로 법을 어기고 감옥으로 들어간다. 한편 ‘신의 저울’에서는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형, 장준하(송창의)를 위해 동생 장용하(오태경)가 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수감되며, 형은 누명을 벗고 동생을 구해내기 위해 검사가 된다. 이 두 드라마는 모두 억울하게 누명을 쓴 자가 있고 그래서 교도소에 들어간 자가 있으며 바깥에 남은 이는 그를 구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는 점에 있어서 유사하다.

또한 이 두 드라마는 똑같이 어떤 식으로든 법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내보인다.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스코필드가 형을 직접 구하기 위해 범법행위를 저지르는 순간, 법에 대한 이 드라마의 태도가 드러난다. 법은 믿을 수 없는 것이며 그러니 탈옥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신의 저울’에서도 법에 대한 태도는 이와 다를 바가 없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동생이 대신 감옥에 들어가게 되는 순간, 법은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세상, 그러니 저 스스로 법을 집행하는 권력자가 되어 동생을 구해내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간 자를 끄집어내기 위한 주인공들의 선택에서 이 두 드라마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프리즌 브레이크’는 애초부터 법을 버림으로써 말과 말이 부딪치는 법정싸움은 포기하고 추리를 방불케 하는 스릴러와 액션의 세계로 나아간다. 반면, ‘신의 저울’은 법을 선택함으로써 칼과 칼의 부딪침보다 더 살벌한 말의 전쟁인 법정드라마의 길을 걷게 된다. 철학적인 질문보다는 짜릿한 퍼즐게임 같은 탈옥 드라마를 선택한 ‘프리즌 브레이크’와 달리, ‘신의 저울’은 “정의란 무엇인가”,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같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신의 저울’에 대한 기대감은 이러한 철학적인 질문을 가능하게 만드는 인물설정에서 비롯된다.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김우빈(이상윤)과 그의 아버지인 청렴한 검사 김혁재(문성근)는 그 운명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사건 이후에 법과 함께 서 있던 자기 존재가 흔들리게 된다. 깨끗한 법조인의 대명사인 아버지를 본받아 살려했던 김우빈은 죄책감에 점점 타락의 길을 걷고, 김혁재는 자신의 아들의 범법사실 앞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편 이 결정적인 살인사건을 후에 조사하게 될 인물이 장준하와 김우빈의 중간에 서게 될 여자, 신영주(김옥빈)라는 점은 드라마를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신의 저울’이 ‘프리즌 브레이크’의 설정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다른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진지한 질문들 때문이다. 결국 법이란 ‘신의 저울’이라는 허울을 쓰고는 있지만 사람에 의해 그 무게가 달아지는 ‘인간의 저울’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신의 저울’은 과연 복수극이라는 단순함을 넘어서 이 법정드라마의 근원적인 질문에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인가. 그 향배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