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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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발칙한 여자들’과 시즌 드라마의 가능성

D.H.Jung 2006. 9. 2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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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고 있는 우리네 드라마들

최근 미국 시즌드라마들의 영향은 우리네 드라마에 양으로 음으로 많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젊은 시청자들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즌드라마를 접하면서 ‘신파’와 ‘트렌디’로 일관하는 우리네 드라마를 ‘구리다’며 외면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종영한 ‘발칙한 여자들’은 아쉬움도 많이 남는 드라마였으나 그만큼 새로운 면모들과 가능성을 많이 보여준 드라마였다.

‘뒷바라지로 10여 년을 헌신했지만 헌신짝 버리듯 다른 여자에게 가버린 전 남편에 대한 복수극’.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소재라면 끔찍한 공포, 처절한 복수극 아니면 최루성 신파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 괴상한 드라마는 ‘깜찍 발랄한 코믹’에 ‘휴먼 드라마’적인 속성까지 갖춘 어떤 새로움을 보여주었다. 또한 우리의 선입관에 박혀있던 아줌마(생활력의 상징 혹은 가부장제의 희생자)의 이미지를 깨준 드라마이기도 했다.

신파 소재로 신파 깨기
‘발칙한 여자들’의 구도는 신파다. ‘뒷바라지 10년에 버려진 아내’, ‘홀로 아이를 키우며 치과의사가 된 여자’, ‘그녀의 복수극’. 이것은 과거 드라마에서는 신파의 공식으로 등장하던 소재들이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송미주의 10년 고통의 삶이 구체적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살아왔다고 얘기할 뿐이다.

드라마는 대신 10년 후 성공해서 돌아온 송미주에서부터 시작한다. 복수의 일념으로 성공했다지만 성공한 그녀에게서는 여유가 느껴진다. 그녀가 아이를 키워내고 그녀의 목표였던 치과의사가 된 순간, 사실 그녀의 복수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성공이 복수’라고 하지 않던가. 이러자 신파가 될 소재는 가벼운 날개를 달기 시작한다. 복수는 귀엽고 심지어는 너무나 가벼워 코믹시트콤 같은 느낌마저 준다.

아줌마로 아줌마 깨기
깜찍 발랄한 전개가 가능한 기본전제는 송미주라는 아줌마의 캐릭터 때문이다. 다 큰 아들을 둔 아줌마이지만 그녀에게서 우리가 과거 아줌마라면 선입견으로 갖고 있던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만의 일을 갖고 있고 사랑에 있어서도 당당하다. 나이가 들고 결혼을 했고 이혼까지 했다는 사실은 과거의 아줌마들의 이미지에서는 부정적인 면이 더 부각되었지만 그녀에게 있어 이것들은 ‘풍부한 인생경험’이 된다.

루키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은 그녀가 스스로 이러한 자신의 장점들을 발산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부분에 있어서 아줌마들의 환타지를 자극하는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과거의 아줌마 이미지를 깨주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이제 현대여성들은 자신의 일과 삶에 있어서 결혼을 했거나 미혼이거나에 상관없이 자신을 스스럼없이 펼쳐 보인다.

시즌드라마로서의 가능성
이러한 소재와 캐릭터의 참신성은 우리 식의 시즌드라마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최근 미국 시즌드라마들은 우리네 드라마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케이블 채널들에 의해 소개된 미국 시즌드라마들은 이제 ‘미드족(미국드라마에 열광하는 사람들)’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시즌드라마들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드라마의 맛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것이 현재 우리네 트렌디 드라마들의 퇴조와도 연관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 길들여지면, ‘한류’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그 언저리에서 과거의 영광만을 논하는 우리의 트렌디 드라마는 ‘너무 뻔하고 재미없다’는 것이다. ‘발칙한 여자들’의 시즌드라마로서의 가능성은 바로 그런 트렌디 드라마의 뻔하고 재미없는 설정을 깬 그 지점에 있다.

그래도 남는 아쉬운 점들
하지만 이 드라마에도 역시 아쉬운 점들이 많다. 그것은 고상미, 양다림, 양지환, 백억년 같은 다양한 인물들이 포진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그 중심 축이 송미주와 그 주변인물들에 집중되었던 점이다. 이것은 (한 명의 주인공으로 집중되는) 과거 드라마 구도의 힘이 여전히 지금에도 미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또한 여성들의 캐릭터에 비해 남성 캐릭터들이 너무 과장되게 그려져 있다는 점도 옥에 티다. 이 드라마의 남성상은 기혼자와 미혼자가 나누어진다. 어릴수록 더 성숙된 인물로 그려져 심지어는 준이가 가장 사려 깊고 이해심 많은(그는 결국 모두를 용서한다) 인물처럼 보인다. 또한 마지막에 가서 ‘남편의 참회’와 ‘그것에 대한 미주의 용서’라는 해피엔딩의 선택 역시 과거의 구도를 그대로 따라가는 느낌이다.

이것은 모두 매회의 에피소드가 하나씩 끝나면서도 계속 연결성을 갖는 시즌 드라마와 ‘다음 회에 계속’으로 이어지는 우리 식의 드라마 구도 사이에 이 드라마가 서 있었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이다. 좀 실험적일 수 있지만 애초부터 시즌드라마 형식을 취했다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여전히 참신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제 막 변화하고 있는 우리네 드라마들의 신호탄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네 드라마들은 이제 좀더 참신하고 좀더 새로우며 좀더 파격적인 그 어떤 것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