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3사 복수극, 엇갈린 운명의 늪에 빠지다
지금 드라마들은 엇갈린 운명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MBC 월화드라마 ‘에덴의 동쪽’은 운명의 장난 종합 선물세트(?) 같은 드라마. 전형적인 출생의 비밀의 코드가 들어가 있는 이 드라마는 어린 시절 서로 원수지간인 집안의 아들들, 즉 이동욱(연정훈)과 신명훈(박해진)의 운명을 바꾸어버린다. 이렇게 되자 본래 핏줄로 따진다면 자식과 부모가 맞서고, 같은 형제가 맞서는 형국이 되어버린다. 여기에 이 둘 사이에 끼워 넣은 지현(한지혜)마저 사랑하던 이동욱과 헤어져 신명훈과 결혼하게 되고 이 운명의 늪에 동참하게 된다.
꼬여도 너무 꼬였다
이 드라마가 가진 관계의 복잡함은 우리네 드라마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목되던 삼각 사각관계와 출생의 비밀 같은 자극적인 설정에서 비롯된다. 물론 이러한 설정은 비판받는 것이지만 이 드라마의 높은 시청률과 특유의 극성은 바로 이 요소들로부터 만들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 드라마 속의 인물들은 엇갈린 운명 속에 빠져 누구 하나 행복을 누리는 자가 없다. 이동철(송승헌)은 카지노 대부 국회장(유동근)의 딸인 영란(이연희)과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만 국회장의 충복으로서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
동생 이동욱은 더 관계가 복잡하다. 동욱은 지현을 사랑하지만 이미 지현은 원수의 자식인 신명훈과 결혼했고, 그래도 일편단심 지현만을 생각하는 동욱을 혜린(이다해)은 사랑한다. 그런데 그 혜린은 또 자신의 언니와 결혼을 약속했지만 그것조차 파기해버린 백성현(박성웅)의 구애를 받는 입장이다. 그런데 시청자들은 여기에 이동욱이 사실은 신명훈과 운명이 바뀐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니 이 일련의 운명의 장난들은 단순한 삼각 사각관계 그 이상의 복잡함을 띄게 된다.
SBS 월화 드라마 ‘타짜’에서는 고교시절 둘도 없던 친구였던 고니(장혁)와 영민(김민준)이 각각 타짜의 세계에 들어오면서 서로 대결하는 위치에 서게된다. 영민이 아귀(김갑수)의 수하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또한 고니의 여자친구인 난숙(한예슬) 역시 마찬가지. 그녀는 교도소에 들어간 오빠의 형기를 줄이기 위해 아귀 밑, 정확히 얘기하면 정마담(강성연) 밑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녀는 고니와 둘도 없는 연인관계이지만, 또 하나의 이름 지나로 불릴 때는 고니와 대결해야 하는 운명이다.
복수극의 엇갈린 운명, 그다지 신선한 것이 아니다
KBS 수목 드라마 ‘바람의 나라’에서는 아버지인 유리왕(정진영)과 아들인 무휼(송일국)이 엇갈린 운명에 서 있다. 고구려를 망하게 할 운명을 타고났다는 어린 무휼을 아버지는 차마 죽이지 못하고 버리게 되고, 그 버려진 아들은 먼 길을 돌아 아버지에게 칼끝을 겨누게 된다. 이 전형적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구조를 지니고 있는 ‘바람의 나라’에서 서로 맞서게 되는 부자는 보는 이를 안타깝게 만들며 드라마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 세 드라마가 모두 복수극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왜 이러한 운명의 장난이 모두 활용되고 있는가를 설명해준다. 아버지와 아들이 맞서고, 형제가 맞서고, 친구가 맞서고, 연인이 맞서는 이런 구조는 사실상 드라마를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의식적으로 꼬아놓은 것이지만, 또한 그 복수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전달하기 위함이다. ‘에덴의 동쪽’의 복수는 그것이 결국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날아온다는 걸 말해주고, ‘타짜’는 평경장이 말하듯 도박판에서 복수란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걸 보여주며, ‘바람의 나라’에서의 복수는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의 운명적 한계를 드러내주기 위해 사용된다.
복수극이 가진 이러한 엇갈린 운명 코드는 그러나 지나치게 드라마를 꼬아 시청자의 시선을 묶어두겠다는 의도가 짙다. 어떤 경우에는 이 꼬여진 운명 때문에 드라마가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제 자리에서 빙빙 도는 경우까지 생기게 된다. 물론 주제의식을 위해 활용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코드가 그다지 신선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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