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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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주중드라마, 남자들의 대결 vs 여자들의 대결

D.H.Jung 2009. 4. 13.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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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결 국면에 빠진 드라마들, 관전 포인트는?

지금 우리네 드라마는 대결 중이다. 각각의 드라마 속에서는 남자들 혹은 여자들이 서로 대결을 벌이고 있고, 드라마 밖으로 나와도 그 남자들이 대결하는 드라마는 여자들이 대결하는 드라마와 매일 밤 대결을 치르고 있다. 드라마가 기본적으로 갈등구조와 그 해결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르라면, 대결구도는 드라마의 핵심이기도 하다. 따라서 각 드라마의 핵심과 전하려는 메시지를 보려면 그 대결구도가 무엇인지를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지금 드라마들은 무엇과 대결하고 있으며,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월화의 대결, ‘남자이야기’ vs ‘내조의 여왕’
월화 드라마 중 ‘자명고’ 역시 낙랑공주(박민영)와 자명공주(정려원)가 대결구도를 이루고 있지만 그것이 사극이라는 점에서 예외를 둔다면, 현대극인 ‘남자이야기’와 ‘내조의 여왕’이 보여주는 대결구도는 흥미롭다. ‘남자이야기’는 자본의 힘에 철저하게 낭떠러지로 떨어진 김신(박용하)과 그런 자본을 손아귀에 주무르기 위해 어떤 짓이든 하는 채도우(김강우), 이 두 남자의 피투성이 대결을 다룬다. 반면 ‘내조의 여왕’은 한때는 퀸카였으나 지금은 알바로 전전하며 남편의 백수탈출을 위해 온 몸을 던지는 천지애(김남주)와, 한 때는 폭탄으로 천지애의 뒤만 졸졸 따라다녔으나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어 그녀 위에 군림하는 양봉순(이혜영), 이 두 여자의 대결이다.

‘남자이야기’가 자본과 그 자본의 폭력 앞에 내둘러진 강자와 약자의 대결구도를 통해 사회가 가진 모순들을 뒤집어보려 하고 있다면, ‘내조의 여왕’은 취업 문제와 직장 내 권력의 문제를 내조라는 여성적인 시점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둘 다 사회적인 이슈를 잡고 있으며 그것이 모두 불황과 연관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으나 그 접근방식은 판이하게 다르다. ‘남자이야기’는 본격 사회극에 가깝고 ‘내조의 여왕’은 코믹 풍자극에 가깝다. 좀 더 절절한 리얼리티를 원한다면 ‘남자이야기’가 갖는 박진감 넘치는 대결구도를 권하고, 가볍게 터치하면서 뒷통수를 치는 풍자를 원한다면 ‘내조의 여왕’이 갖는 코믹한 대결구도를 권한다. 남자들의 세계와 여자들의 세계가 갖는 대결의 다른 성격도 관전 포인트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다.

수목의 대결, ‘카인과 아벨’ vs ‘미워도 다시 한 번’
‘돌아온 일지매’의 후속 드라마로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은 ‘신데렐라맨’을 차치해놓고 본다면, 수목드라마 ‘카인과 아벨’과 ‘미워도 다시 한 번’의 대결구도 역시 남자들의 대결과 여자들의 대결로 나눠진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카인과 아벨’은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형인 이선우(신현준)와, 그로부터 버려지고 죽음의 위기에까지 처했다 살아 돌아온 이초인(소지섭)의 대결구도를 그린다. 뇌의학 센터를 지으려는 이선우와 응급의학센터를 지으려는 이초인의 병원 내 권력대결도 볼거리이며, 기억을 잃었다 다시 되찾은 이초인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으나 뇌종양이 재발한 형 이선우 사이에 얽히는 복잡한 대결구도(여기에는 사이에 멜로 대결도 포함된다)도 볼거리다.

한편 ‘미워도 다시 한 번’의 대결구도는 기본적으로 이정훈(박상원)을 사이에 두고 부인인 한명인(최명길)과 내연녀인 은혜정(전인화)의 대결구도를 그리고 있지만, 여기에 한명인의 정략적인 며느리로 들어온 최윤희(박예진)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그 대결양상이 복잡해졌다. 최윤희가 본래 은혜정의 숨겨진 딸이었던 것. 이렇게 되자 그녀의 시어머니와 대결을 벌이는 이가 자신의 친어머니(은혜정)가 되고, 시아버지는 갑자기 친아버지가 된다. 한편 최윤희의 동생인 최재상(김보강)이 은혜정의 딸(둘째 딸) 은수진(한예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관계는 더 복잡해질 양상이다. 어찌 보면 ‘하늘이시여’의 얽히고설키는 막장 드라마의 구조를 연상시키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대결양상이 가지는 파괴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목드라마들은 이처럼 어떤 사회적인 맥락을 제시한다기보다는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쪽에 맞춰져 있다. ‘카인과 아벨’이 기억과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면, ‘미워도 다시 한 번’은 가족관계의 억압과 그 탈출 욕망의 부딪침을 다루고 있다.

주중 드라마들이 모두 대결구도를 이루고 있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좀 더 첨예화되어 이 불황기 드라마의 한 특징을 이루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만큼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요소로서 대결국면이 갖는 힘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대결구도는 그것을 연기하는 연기자들의 연기대결 또한 볼거리다. ‘남자이야기’에서 카리스마 연기로 변신한 박용하와 악역 연기에 도전하는 김강우, 그리고 ‘내조의 여왕’에서 푼수로 변신한 김남주와 못난이 역할에서 우아한 악역으로까지 캐릭터 폭을 넓히고 있는 이혜영의 연기대결이 그렇다. 또 수목드라마, ‘카인과 아벨’에서는 선한 눈빛에서 공포가 느껴지는 눈빛까지 변신하는 소지섭의 연기와 내적 갈등을 가진 악역 신현준의 연기대결이, 그리고 ‘미워도 다시 한 번’에서는 막장이라는 용어마저 불식시키는 최명길과 전인화의 명품 연기가 백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