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을 씻어주는 명품드라마, ‘남자이야기’
진정 막장 아니면 안 통하는 시대인가. KBS 월화드라마 ‘남자이야기’는 이른바 막장드라마 시대에 섬처럼 존재하는 드라마다. ‘아내의 유혹’이 공공연히 막장드라마를 내세우며 그 도화선에 불을 지폈다면, ‘에덴의 동쪽’은 초반에는 숨기다 차츰 본색을 드러냈고, ‘꽃보다 남자’는 강력한 판타지로서 막장의 흔적들을 감췄으며, ‘미워도 다시 한번’은 아예 명품 드라마로 시작하다가 방향을 선회하기 시작했다(어쩌면 본래부터 그랬는지도 모른다).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들을 모두 막장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막장의 위험성(불륜, 출생의 비밀, 불치 같은)을 한두 가지 정도는 갖고 있다. 그것은 아무리 주제의식에 투철하다 하더라도 여전히 시청률을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남자이야기’에는 그런 혐의를 지울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본격적인 사회극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이 드라마는 그 결을 유지함으로써 사회적인 메시지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흥미진진한 대결구도를 놓치지 않는다.
‘남자이야기’는 분명 제목처럼 남자들의 세계를 다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이야기가 남성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라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돈이라는 감정 없는 괴물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악역으로서 사이코 패스처럼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채도우(김강우)는 바로 이 괴물을 그대로 캐릭터화한 인물이다. 그는 늘 모니터 위에 떠있는 숫자들을 보고 그 숫자를 갖고 놀지만, 정작 그 숫자가 의미하는 사람들에게는 무감정하다. 그는 자본의 시스템 그대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니 그 숫자 밑에서 한 인생의 파탄을 경험하는 김신(박용하)은 바로 그 시스템에 대항하는 인물이 된다. 전형적인 복수극이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처절함 속으로 침잠하는 그런 복수극은 아니다. 자본의 시스템과 대항하는 그의 방식이 역시 그 시스템의 방식을 이용하는 것이기에 이야기는 ‘스팅’ 같은 게임의 느낌이 강하다. 김신을 돕는 한 무리들이 하나씩 모여 채도우와의 대결을 벌인다는 점 역시 드라마를 경쾌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어떤 질척함보다는 쿨한 면모가 보인다는 얘기다.
드라마를 명품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연기자들이다. 그 중 드라마의 기본 축을 세워주고 있는 채도우의 바늘로 찔러 피 한 방울 안나올 것 같은 악역은 실로 백미라 할 수 있고, 거친 남자로 변신한 박용하, 팜므파탈과 순수함을 오가는 박시연의 연기도 드라마의 각을 세워준다. 말이 필요 없는 이문식과 김형범 그리고 김뢰하의 명품조연연기와 모 광고 맺돌춤으로 더 유명했던 박기웅의 연기변신도 놀랍다. 또 각각의 연기들에 조화를 만들어주는 안정된 영상연출도 이 드라마를 빛내주는 요인이다.
‘남자이야기’는 송지나 특유의 촘촘하고 신뢰가 가는 대본과 그걸 100% 소화해내는 연기자들과 연출이 삼박자를 이룬 요즘 보기 드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작금의 막장의 요소들을 가진 드라마들 속에서 눈이 피곤했다면, 그 피곤을 풀어줄만한 드라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막장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일까. 이 잘 만들어진 드라마의 시청률이 좀체 오르지 않는 것은. 이 드라마에 명품이라는 호칭을 쓰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지는 것은 이제 명품이라 이름붙이면 오히려 더 외면 받는 시대인 것만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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