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차우'와 '해운대', 웃음의 롤러코스터를 타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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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와 '해운대', 웃음의 롤러코스터를 타다

D.H.Jung 2009. 7. 18.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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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롤러코스터, '차우'와 '해운대'

무덤을 파서 사체의 머리를 먹어치우고, 어디선가 나타나 사람을 훅 채어 게걸스럽게 뜯어먹으며, 심지어는 인가에까지 내려와 무차별로 사람들을 향해 돌진하는 식인 멧돼지는 말 그대로 괴물이다. 그 괴물을 잡으러 숲 속 산장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비장해질 수밖에 없다. 긴박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인 듯, 캠코더로 찍힌 듯한 영상이 어지럽게 돌아가는데 순간, 캠코더를 든 사람이 말한다. "감정이 안 살잖아요. 다시 갈게요." 그러자 그 비장했던 사람들이 과장되게 연기를 한다. 객석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온다. 공포에서 순식간에 풀려진 긴장이 만들어내는 웃음이다.

괴수영화를 표방한 '차우'에서 이런 웃음은 흔하다. 살인사건이라 판단되어 시골로 수사를 온 신형사(박혁권)는 엉뚱하게도 남의 물건을 훔치는 버릇이 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행동은 장르 영화 속에서의 형사가 가진 긴장감을 해체시키면서 웃음을 몰고 온다. 포수 선후배 사이인 백만배(윤제문)와 천일만(장항선)이 심각하게 젊은 시절에 있었던 일을 가지고 설전을 벌이다가, 화를 내며 카메라 밖으로 빠져나간 백만배가 다시 돌아와 놓고 간 총을 가져가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팽팽한 긴장감은 이처럼 어리숙한 행동 하나로 해체되고 순식간에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어버린다.

공포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거꾸로 기대한 만큼의 해체를 통한 웃음을 얻는다. 물론 긴박감 넘치는 멧돼지의 돌진과 그것을 피하려 달리고 달리는 인물들이 벌이는 사투는 장르 영화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 다만 그 과정을 지나가면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을 코미디로 버무려놓은 것이 다를 뿐이다. 영화를 본 이들이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은 이 기대감과 배반감이 동시에 어우러져 기분 나쁘지 않은 유쾌함을 주는 이 영화의 장르 변용 때문이다. 물론 혹자는 그 배반감이 너무 커 실망할 수 있겠지만 장르의 클리쉐가 파괴되는 순간을 즐기기만 한다면 의외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된다. 긴박감 넘치는 스릴러와 웃음을 동시에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해운대' 역시 재난영화라는 공식적인 장르에 걸맞지 않게 시종일관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영화라는 점에서 '차우'와 유사한 점이 있다. 재난영화가 가진 재난이 벌어지기까지의 과정에 들어가는 드라마를 '해운대'는 인물들이 만들어가는 다소 과장된 코미디로 채운다. '죽음 앞에 선 인간들'이라는 재난영화의 진지함을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선 관객들은 시종일관 터져 나오는 주체할 수 없는 웃음 폭탄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시에 그 웃음은 의외의 수확을 얻은 것 같은 즐거움을 준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과정들을 촘촘한 웃음의 코드로 채워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구수한 부산 사투리의 사람들이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일상들 위로 쓰나미가 밀어닥칠 때, 블록버스터로서의 면모는 비로소 드러난다. 해운대를 삼켜버리는 쓰나미를 연출한 CG는 생각보다 자연스럽고 다이내믹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 볼거리를 장악하는 힘은 영화 전반부 내내 쓰나미처럼 몰아친 웃음폭탄 속에 숨겨진 인물들 간의 드라마이다. 그 드라마들이 후반부를 덮치는 쓰나미 위에 겹쳐지면서 웃음은 고스란히 눈물로 전화된다. 인물들에 대한 감정이입이 볼거리의 재미를 부가시키는 것이다.

올 여름 우리식의 블록버스터로 지목되는 '차우'와 '해운대'가 모두 웃음을 주 무기로 갖추고 장르를 변용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이것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차별화되는 점인 동시에, 우리식의 블록버스터에 대한 방향모색으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성공적인지는 아직까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볼거리의 롤러코스터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는 달리, 이 영화들은 시종일관 웃기고 울리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연출하는 것으로 색다른 재미를 구축한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