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배우, 김명민
김명민의 연기투혼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불멸의 이순신'에서 신화 속의 이순신을 인간 이순신으로 살려놓고, '하얀거탑'에서 장준혁을 통해 우리 시대의 욕망을 들춰내고는,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로 변신해 오합지졸 갈 곳 몰라 하는 서민들에게 벼락같은 호통과 당당함을 가르친 우리 시대의 진짜 배우, 김명민. 그는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이제 온 몸의 근육이 점점 마비되어가는 루게릭병 환자 종우로 점점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MBC스페셜'이 조명한 배우 김명민은, 이미 종우처럼 걷고 종우처럼 생각하고 종우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자동차 앞에서 넘어지는 장면을 찍기 위해 김명민은 계속 "한번만 더"를 요구했다. 정작 그것을 요구해야 할 감독 스스로도 숙연해질 정도로 그는 종우가 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잘 먹지 못하는 종우가 되기 위해 감량에 감량을 거듭해온 김명민은 무려 20킬로그램을 빼는 투혼을 보여주었다. 혹자는 미이라 같다고 얘기하지만, 김명민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듯 했다.
그 다큐멘터리의 제목이 '거기에 김명민은 없었다'였다는 건,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잘 말해준다. 배우 김명민을 포착하는 다큐멘터리에 정작 김명민은 없고 종우만 덩그라니 남아 있었다는 얘기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 이름이 아니라 캐릭터만 쭉 올라오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 작품을 했던 사람이 이 작품을 했다는 게 의심 갈 정도로 캐릭터의 차별화가 확실했으면… 사람들이 제 이름을 제대로 모르고 못 알아봐도 제가 배우의 길을 제대로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하죠.”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 루게릭’과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는 종우. 그리고 그의 곁을 지키는 지수(하지원)의 감동 휴먼스토리. '내 사랑 내 곁에'를 설명하는 간략한 문구를 보나, 극단적인 신파라는 평까지 받았던 '너는 내 운명'을 연출한 박진표 감독의 면면을 보나 이 영화는 지독하게도 눈물샘을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내 사랑 내 곁에'가 신파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김명민이라는 배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영화가 시작하기도 전에 대중들을 감동시켰다. 그 감동의 실체는 김명민이 전하는 영화에 대한 진심이다.
억지 코드로 연출되어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신파와는 달리, 우리는 완벽하게 종우가 된 김명민이라는 배우를 통해서 종우의 진심을 이미 훔쳐보게 되었다. 루게릭병이 가진 종우의 고통을 이미 바짝 마른 몸으로 수척해진 김명민을 통해 느낄 수 있게 되었고, 그만큼 안타까울 사랑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은 김명민의 연기투혼이 왜 의미 있는 일인지를 보여준다. 그는 종우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종우로 살고 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진정성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부터 감동을 주는 배우, 김명민. 그 스틸 한 컷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이미 연기의 차원을 넘어서 거기 있는 그 사람이 김명민이 아니라 진짜 루게릭병을 앓는 종우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가을 그 종우 때문에 우리들은 아마도 깊은 감동의 눈물을 흘릴 것 같다.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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