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예능, 둘 다 잡아버린 명해설
"김C 형은 감독으로 취임하셨으니까. 저는 어떻게 기록원으로라도..." '천하무적 야구단'의 허준 캐스터는 예능 프로그램에 욕심을 보였다. 처음 이 프로그램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는 그저 야구중계를 위한 캐스터, 그것도 해설자인 김C의 보조적인 인물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그의 존재감은 점점 두드러졌다. 해박한 야구지식과 듣는 이를 즐겁게 만드는 야구중계는 기본이고, 촌철살인의 멘트는 '약방의 감초' 그 이상을 보여주었다. 온게임넷 등에서 현장감 넘치는 게임 중계로 탄탄한 팬층을 갖고 있는 실력파지만,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 그가 이런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몸매로만 본다면 지금 서 있는 것도 신기할 정도의 선수인데요.." 허준 캐스터는 1번 타자인 한민관이 출루하자 이렇게 멘트를 던졌다. 또 오지호가 출전했을 때는 "드라마를 통해 좋은 모습 보여주다가 버라이어티에 발을 담갔는데.. 진창이예요!"하며 그 단단한 이미지에 딴지를 걸었다. 이것은 사실상 캐릭터 해설에 가깝다. 야구가 중심에 서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야구해설자가 캐릭터 해설까지 해주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그의 해설은 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멤버들의 캐릭터를 손쉽게 강화해주고, 캐릭터가 갖고 있는 과거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 현재 경기와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실로 적지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감독 겸 해설자인 김C와는 거의 만담에 가까운 수준으로 이야기를 맞추는 능력을 보여준다. "이하늘 선수가 출전합니다. 최근 두 경기에서 타율은 0할입니다." 허준이 이하늘의 부진을 '0할'로 강조해 표현하자, 대뜸 김C가 특유의 시니컬한 목소리로 받아친다. "망할 타율이죠." 또 부진을 보이던 마리오가 점점 나아진다면서 김C가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이거든요."하고 말하자, 허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렇죠. 네 죽순 같은 선수예요"하고 받아친다. 막말 해설은 김C의 전매특허였지만, 바로 그와 호흡을 맞추는 허준 역시 정석적인 중계의 선을 넘어서는 재미를 만들어내곤 한다. 1루수인 오지호의 실수로 아웃 카운터를 올리지 못하자 그는 "1루수 바꿔야 되지 않나요?" 하고 오버하는 멘트로 웃음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허준의 해설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그것이 경기 내에서만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장염을 앓는 동호에게 그는 "오늘 장염 때문에 상당히 뒤끝이 좋지 않은 우리 동호선수..."라며 경기 밖 상황(물론 경기와 연관이 있지만)을 해설해준다. 하지만 이렇게 폭넓은 해설 속에서 그가 빵빵 터지는 웃음을 만들어내는 힘은 그의 해박한 스포츠에 대한 지식과 특유의 순발력 덕분이다. "팀에서 홈런 1위를 달리는 선수예요(허준)." "그럼 홈런을 얼마나 친 걸까요?(김C)" "보통 성인야구에서 홈런 1위면 약 두 개를 친 거죠(허준)." 이 일련의 해설 속에서 보여지는 것은 허준의 캐스터로서의 사전조사와 그 정보를 갖고 던지는 순발력 넘치는 멘트의 재기발랄함의 조화이다.
허준 캐스터가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주목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본래 TV에서 중계되는 스포츠의 맛을 살리는 것은 스포츠 자체보다 스포츠 해설에 의지하는 바가 크다. 스포츠는 참여했을 때 즐거움을 주는 것이고, 스포츠 중계는 바로 시청자가 그 스포츠에 참여할 수 있는 가이드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스포츠를 예능 프로그램의 구색으로 두지 않는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허준 캐스터는 프로그램의 대부분을 이끌어나가는 힘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허준의 존재감을 단지 그가 캐스터라는 이유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캐스터로서의 안정된 자질을 바탕으로 그 위에서 스포츠중계와 예능중계의 선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만의 독특한 순발력이 없었다면 이처럼 그가 돋보일 수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스포츠와 예능을 둘 다 잡아버린 명해설의 주인공 허준이 자신의 캐릭터를 세움으로써 '천하무적 야구단'은 이제 본격적인 스포츠 버라이어티의 기본 조건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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