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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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네모난 세상

드라마 세상... 아버지의 실종, 어쩌다가?

D.H.Jung 2009. 9. 1.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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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풍이거나, 민폐거나 어쩌다 아버지들은?

드라마 세상이 바로 현실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현실을 어느 정도는 반영한다. 언제부턴가 드라마 속에 아버지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현실에서 자꾸만 좁아져가는 아버지라는 위상을 가늠하게 한다.

아버지는 집 담보까지 집어넣었지만 결국 망한 회사 앞에서 망연자실해 하고, 그 회사를 버리고 야반도주해버린 사장 앞에서 쓰러져버린다(SBS '천만번 사랑해). 이혼하고 다른 남자에게 간 어머니를, 수선집을 하는 아버지는 "자기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보냈다며 그래도 여전히 생각이 난다고 쓸쓸하게 말한다(SBS '스타일').

이것은 전통적으로 남성 시청자들의 몫이었던 사극에서도 마찬가지다. '선덕여왕'에서 덕만(이요원)과 천명(박예진)의 아버지인 진평왕(조민기)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무능력한 왕이자 아버지다. 그는 미실(고현정)의 권력 앞에 딸을 버리고, 심지어 명백히 살해된 천명의 죽음 앞에서도 그 죽음이 사고였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아버지가 실종된 드라마 세상은 어느새 여자들의 세상이 되었다. 그 세상 속에서 남자들은 여성들의 간택을 받는 인물로 등장하거나, 향수어린 과거의 가치에서 허우적대는 인물로 그려진다. '꽃보다 남자' 이후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버린 '내조의 여왕', '아가씨를 부탁해' 같은 드라마 속에서 남자들은 하나 같이 부자에 꽃미남으로 등장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여성들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다.

한편 남자의 세상을 그리고 있는 '드림'이나 '태양을 삼켜라', 그리고 종영한 '친구' 같은 작품 속에서 거친 남자는 지금 시대와는 아무런 공감을 일으키지 않는 향수로 그려진다. 그들은 여전히 성공에 목말라 하고 있고, 그 성공을 위해 사투를 벌인다. 미래의 성공보다 현재의 행복을 추구하는 작금의 가치관에서 보면, 그들의 사투는 안쓰럽게만 보일 뿐이다. 도대체 왜 그들이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가는지 잘 공감이 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젊은 남자들조차 여성의 대상이 되거나, 과거의 향수 속으로 숨고 있는 이 상황 속에서, 이제는 나이 들어 고개 숙인 아버지라는 존재는 더더욱 자리할 곳이 없어졌다. 아버지는 드라마 세상 속에서 병풍으로 존재하거나, 혹은 젊은이들의 민폐로서 기능한다. 드라마는 본질적으로 그 시대의 감정이입할 대상을 나이와 성별을 넘어 포진시키는 경향이 있다. 아버지의 실종과 그 실종된 아버지에 대한 무관심은, 현실의 아버지들이 서 있는 위치를 가늠하게 한다.

이제는 한발 물러나 가족들 틈에서도 늘 뒷전에 앉아계시는 아버지들은, 그나마 소일거리로 찾아보는 드라마 속에서조차 감정이입할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시대는 달라졌고, 남성성보다는 여성성의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그 달라진 사회를 반영하는 드라마가 과거 억압되었던 여성들을 살려내고, 마초적이기만 하던 남성들을 여성성 가득한 남성들로 그려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과거의 세계에 던져놓거나, 현실의 패배자로서만 그려지는 아버지의 존재는 문제가 있다. 지금 시대에 맞는 아버지 상은 도대체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