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피는 꽃’, 드라마가 꽃 필수록 배우들의 매력도 꽃이 핀다

밤에 피는 꽃

낮에는 과부 밤에는 서민영웅. MBC 금토드라마 <밤에 피는 꽃>은 홍길동의 과부 버전 같은 느낌으로, 조여화(이하늬)를 지칭하는 제목으로 시작했다. 이 의미는 포스터에도 그대로 담겼다. 밝은 낮 조여화가 수절 과부로서 집안에 갇힌 거나 마찬가지로 앉아 있지만, 지붕 위에는 복면을 한 조여화가 달을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이 그것이다. 그건 밤이 되어야 비로소 진면목을 드러내는 조여화의 모습, 그건 제목 그대로 밤에 피어나는 꽃이다. 

 

열녀의 길을 요구받는 수절과부와 담장을 넘어 영웅적인 일들을 해내는 조여화의 대비효과가 만들어내는 극적 재미. 그것이 <밤에 피는 꽃>이 가진 서사의 핵심이지만, 이 드라마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조여화와 금위영 종사관 박수호(이종원)의 15년 전 가족들에게 벌어진 사건과 연결되며 그 진실을 파헤쳐가는 이야기로 펼쳐진다. 깜깜한 밤처럼 베일에 가려져 있던 진실이 꽃처럼 피어난다는 의미로 제목이 다시 읽히게 된 이유다. 

 

그런데 이제 시청자들은 <밤에 피는 꽃>의 의미를 조여화와 박수호 역할을 연기하는 이하늬와 이종원의 케미가 꽃 핀다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 작품의 핵심적인 재미는 조여화라는 캐릭터의 매력에 기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평화로워 보이지만 이 작품 속 인물들이 겪은 일들은 집안이 풍비박산나는 참변에 가깝다. 조여화는 오빠가 실종됐고, 원치않는 좌상 집 며느리가 되지만 남편이 사망함으로써 첫날밤도 치르지 못하고 수절과부가 된다. 박수호의 집안은 누군가에 의해 도륙당한다. 모두가 죽고 박수호만 박윤학에 의해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이런 비극을 밑그림으로 두고 있지만, <밤에 피는 꽃>은 무겁지 않고 지나치게 진지하기보다는 발랄하고 경쾌하게 그려진다. 거기에는 이하늬라는 배우가 가진 밝은 에너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밤 같은 비극의 주인공이지만, 그 안에서도 밝은 모습을 잃지 않는 캐릭터가 조여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캐릭터가 이토록 씩씩하고 유쾌하게 그려져 비극을 희극처럼 그려낼 수 있게 된 데는 이하늬의 공이 적지 않다. 밤의 비극을 웃음 꽃 피는 희극으로 그려낸이하늬의 존재감을 제목을 통해 읽어낼 수 있게 되는 이유다. 

 

동시에 상대 역할인 박수호는 초반에는 다소 자신의 임무에만 충실한 종사관으로서 그 내적 감정들이나 인간적 면모가 숨겨졌지만, 조여화와 함께 사건을 수사하고 공조하면서 점점 사적 감정까지 느끼게 되는 모습을 통해 그 매력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무표정해 보였던 얼굴이 조여화와 우연히 갖게 되는 스킨십 같은 상황들을 통해 감정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 비극의 주인공으로서 밤 같은 무거움에 짓눌려 왔던 감정들이 조여화를 통해 꽃피고 있다고나 할까. 

 

초반에는 진중했지만 차츰 말랑말랑해지기도 하는 면면들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박수호를 연기하는 이종원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도 커지고 있다. 이것은 이하늬가 보여주는 연기와 정반대의 흐름으로 두 사람이 케미를 맞춰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즉 이하늬가 연기하는 조여화가 초반에는 밝고 가벼운 모습에서 점점 과거사를 알아가며 무겁고 진중한 모습으로 변해간다면, 이종원이 연기하는 박수호는 초반에는 무겁게 등장하지만 차츰 조여화와의 케미를 통해 말랑말랑한 사적 감정들을 드러내기도 하는 모습으로 변해가기 때문이다. 

 

결국 연기도 작품도 앙상블에서 완성된다고 하던가. 조여화와 박수호가 함께 수사를 공조하면서 서로에 대한 감정을 쌓아나가는 그 케미는 다름 아닌 이하늬와 이종원의 연기 앙상블로 완성되어가고 있고, 그것은 결국 이들이 끝내 어두운 밤처럼 가슴 한 켠에 두고 있던 미혹들을 밀어내고 진실도 사랑도 꽃피우는 이야기의 앙상블로 이어지고 있다. 제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고 해도 피어나는 꽃처럼, 무거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어떤 꽃의 희망과 위로를 전해주는 드라마 <밤에 피는 꽃>의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배우들의 연기 꽃도 활짝 피어나고 있다. (사진:MBC)

놀라운 드라마 ‘눈이 부시게’가 약자들을 바라보는 시각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알츠하이머 설정은 놀라운 반전이다. 그리고 그 반전이 가진 의미도 새롭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계라는 타임리프 설정이 혜자(김혜자)라는 한 어르신의 알츠하이머라는 반전은 이 판타지와 코미디가 어떻게 현실로 이어지는가를 잘 설명해준다. 기억의 조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알츠하이머라는 질환은 그렇게 어르신들이 가진 ‘시간을 되돌리고픈 욕망’을 투영시켜 혜자로 하여금 타임리프할 수 있는 시계를 갖게 만들었다.

물론 그건 환상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저 아무 의미 없는 신기루라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알츠하이머를 가진 어르신에게 그 기억의 조작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일 수 있으니 말이다. 시청자들이 본 것은 그래서 그 현실로서 다가오는 환상을 경험하는 어르신의 모험담일 수 있었다. 지금껏 그 어떤 드라마가 알츠하이머를 소재로 환상 경험을 하는 어르신의 속내를 들여다 본 적이 있을까. 

그러고 보면 효도원이라는 공간도 또 더 나이 든 몸이 되어 아빠(안내상)와 엄마(이정은)를 대하던 혜자가 이해가 된다. 나이 들면 아이가 된다는 그런 이야기는 알츠하이머를 가진 혜자로 하여금 자식을 부모로 인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효도원은 그렇다면 요양원 같은 공간일 것이고 준하라는 인물은 그 곳에서 자신을 잘 대해준 의사였을 게다. 

이 드라마가 놀라운 건 알츠하이머를 가진 혜자가 겪는 환상체험을 코미디와 활극 같은 경쾌함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효도원에 감금된 준하(남주혁)를 구해내기 위해 혜자가 리더가 되어 모인 이른바 ‘할벤져스’는 이 드라마가 약자가 되어 소외된 어르신들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유쾌한 시각을 잘 드러낸다. 

효도원에서 음식이든 뭐든 옷 속에 집어넣고 또 뭔가 필요할 때면 그 속에서 뭐든 꺼내줘 이른바 ‘도라에몽 할머니’라 불리는 어르신은 준하 구출작전에서 필요한 연장을 뭐든 꺼내주는 역할을 맡는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어르신은 어둠 속에서 지팡이로 바닥을 치기만 하면 어느 방에 누가 있는가를 찾아내는 능력자가 되고, 쌍둥이 어르신은 길을 거울로 착각하게 만들어 다른 어르신들이 그 길로 탈출하게 해준다. 할벤져스에서 가장 빵 터지는 대목은 몸이 불편해 보조기를 끌고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는 어르신이 좁은 길을 막고 천천히 걷는 통에 뒤쫓아 오던 조폭들이 길을 뚫지 못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 <엑스맨>에 퀵실버가 등장할 때 흐르던 짐 크로스의 ‘Time in a Bottle’을 깔아놓은 대목에서 빵 터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다소 과장된 할벤져스의 코믹한 구출작전에 깔려 있는 건 이 소외되어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처럼 여기던 어르신들이 사실은 저마다의 능력을 가진 인물이라 바라보는 시각이다. 몸이 늙어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오히려 능력으로 바꿔 보여주는 그 과장된 코미디의 웃음 끝에 어떤 감동이 담겨지게 되는 건 바로 이런 시각이 주는 따뜻함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장된 활극이 한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르신의 상상이었다는 게 드러나는 반전은 그 놀라움과 더불어 요양원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어르신들의 현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몸과 그럼에도 무언가를 하고픈 젊은 마인드의 공존은 어쩌면 우리의 기억을 왜곡시켜서라도 그 힘겨운 삶을 버텨내게 하는 게 아닐까. 

“긴 꿈을 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르겠습니다. 젊은 내가 늙은 꿈을 꾸는 건지, 늙은 내가 젊은 꿈을 꾸는 건지.” 장자의 호접몽을 떠올리게 하는 이 혜자의 읊조림 속에서 이 코믹했던 한 바탕 소란의 이야기는 우리네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누구에게나 삶은 한 바탕 꿈같은 웃음과 눈물과 반전일 수 있다는 걸 알츠하이머를 앓는 한 어르신의 내면 깊숙이 따뜻한 시선으로 들여다본 이 드라마의 성취가 아닐 수 없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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