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아이리스', 블록버스터 드라마의 한계 넘을까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아이리스', 블록버스터 드라마의 한계 넘을까

D.H.Jung 2009. 10. 15.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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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 '아이리스', 볼거리만이 아니다

TV가 대형화되고 HDTV 같은 고화질 TV가 대중화되면서 '안방극장'은 말 그대로 실현되는 듯 보였다. 이른바 블록버스터 드라마가 기획되고 만들어지게 된 것은 물론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 그만큼 시장이냐 규모 같은 외연이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로 이러한 매체의 진화가 그 발판을 제공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발목을 잡은 건, 영상이 아니라 스토리였다. 영상은 정말 영화를 방불케 했지만 스토리는 그 영상이 가진 세련됨을 전혀 따라가주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화려한 영상은 오히려 스토리를 잡아먹는 괴물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로비스트'가 그랬고, '태양을 삼켜라'가 그랬다. 드라마가 스토리를 좇아 움직이기보다는 영상만을 따라 움직이는 듯한 이들 드라마가 그 거대한 규모만큼 대중들의 호응을 얻어내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니 '아이리스'가 기획되는 단계에서부터 어찌 우려와 걱정이 없었을까. 이 또 하나의 초대형 블록버스터 드라마가 또 하나의 볼거리에만 치중하는 그저 그런 영화 흉내내기에 머무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은 그간 이런 드라마들의 과장된 제스처에 여러 번 속아봤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리스'가 다루는 소재에서 남북한의 이야기가 들어간다는 점은 그 시의성이 과연 지금에도 적절할까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혹자들은 이 드라마가 영화 '쉬리'의 드라마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쉬리'의 성공은 그 시대가 아직까지 남북 간의 대결구도에 민감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지점이 있다. 하지만 지금 남북한의 이야기는 조금은 구닥다리의 냄새가 난다. 늘 비슷한 접근들이 이 소재 속에서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리스'의 첫방을 통해 느껴지는 점은 최소한 이러한 우려들이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물론 볼거리를 위해 헝가리로 달려가지만 단지 그 풍광이나 장면에만 집착하지 않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기 위한 첫 번째 헝가리 시퀀스는 '본 얼티메이텀' 같은 이른바 본 시리즈가 보여주는 세련된 첩보액션을 잘 그려냈고 그 위에 인물의 감정 또한 포착해내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화려한 액션에 이어서 촘촘히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세 인물, 즉 김현준(이병헌), 진사우(정준호), 최승희(김태희)의 소소한 디테일이 살아있는 이야기들이 배치되는 점은 이 드라마가 적어도 대작에 대한 조급증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찬찬히 이야기를 만들어 극적인 장면으로 몰아가는 드라마 전개나, 그 전개를 잘 받쳐주는 영상 연출은, 앞으로 이 드라마가 볼거리는 물론이고 어떤 대중들과의 호응을 이끌어낼 스토리에도 기대감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멜로와 액션을 세련되게 잡아내는 이 드라마에서 이병헌은 자신이 가진 연기자로서의 장점을 가장 잘 발휘해내고 있다. 그는 멜로 연기와 액션 연기 두 가지를 동시에 잘 소화해내는 연기자다. 그의 액션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액션 연기가 단지 몸동작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깊은 감정에서부터 끌어올려지기 때문이다. 연기력 논란이 우려되었던 김태희 역시 이 드라마에서는 어딘지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풋풋한 본연의 이미지는 극중 최승희를 통해 그대로 보여지지만, 그녀는 또한 NSS의 프로파일러로서의 냉철한 면모를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식상함을 벗어나고 있다.

물론 이제 첫방이 끝난 시점에서 모든 걸 판단하는 것은 섣부른 감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첫방이 보여준 스토리와 볼거리의 적절한 조합은 이 드라마가 그간 블록버스터 드라마라는 이름으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속여온 그 오명을 벗어나게 해줄 거라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과연 '아이리스'는 우리에게 진짜 의미의 '안방극장'을 되돌려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