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이순재의 네버엔딩 변신스토리, 어디까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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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의 네버엔딩 변신스토리, 어디까지?

D.H.Jung 2009. 10. 2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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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동에서 방귀까지, 이순재의 변신 어디까지?

도대체 이순재의 변신은 어디까지일까.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야동을 보다 가족들에게 들키는 연기를 할 때 어찌 이마에 흐르던 식은 땀 같은 당혹감이 없었을까. 그가 말 그대로 자신의 이미지를 망가뜨리면서까지 혼신의 연기를 보여주었을 때, 이른바 '야동순재'는 뻥 터졌고, 그것은 '거침없이 하이킥'을 거침없이 빵빵 터지는 시트콤으로 만들었다.

'지붕 뚫고 하이킥'으로 다시 돌아온 그. 이번엔 칠순의 나이에도 가슴 설레는 사랑을 하는 이른바 '멜로순재'다. 그는 학교 교감인 김자옥과 과학실에서 밀회를 즐기다, 학생들에게 들킬 위기에 몰리자, 방독면을 뒤집어쓰고 이층 창밖으로 뛰어내리는 액션을 선보이기도 하고, 만나주지 않는 김자옥의 집 앞에서 비를 맞으며 밤새워 기다리며 아픈 몸에도 그녀를 만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약속장소로 달려가는 정통 멜로를 보여주기도 한다.

틈만 나면 방귀를 북북 뀌어대는 그. 그녀 앞에서 방귀를 참으려고 안간힘을 쓰다 결국 참지 못하고 상갓집에서 절을 하며 대폭발(?)을 일으키는 순간 또 한 번 뻥 터졌다. 야동순재가 멜로순재를 거쳐 방귀순재가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는 그녀와 만난 지 100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이벤트에서 '네버엔딩 스토리'를 부르다 고음에서 결국 쓰러지고 마는 포복절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조의 여왕'에서 윤상현이 했던 장면을 패러디한 것. 데뷔 53년 만의 세레나데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 아낌없이 무너지는 모습은 보는 이를 빵빵 터지게 만들었다.

이 같은 이순재의 네버엔딩 변신 스토리는 심지어 뭉클하기까지 하다. 칠순의 나이에도 젊은이들이 갖지 못한 연기열정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시트콤이라는 장르가 기본적으로 웃음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갖고 있는 연령과 기존 이미지를 무너뜨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매번 새로운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그 모습이 진정한 '연기자'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추석특집극으로 방영되었던 '아버지 당신의 자리'에서 이제 사라질 위기에 몰린 간이역에서 아들을 잃고, 아내마저 잃은 후 외롭게 자리를 지키며 살아온 아버지 역할을 하는 이순재의 모습은 보는 이를 눈물짓게 만들었다. 한 편에서는 가슴시린 아버지의 상을 보여주고, 다른 한 편에는 아낌없이 무너지며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 마치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아버지의 상을 동시에 보여준다는 것은 그가 가진 연기의 스펙트럼을 가늠하게 만든다.

이순재의 솔선수범 때문일까.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는 폼 잡는 연기자를 찾아볼 수가 없다. 물론 시트콤이라는 장르가 기존 이미지를 거꾸로 뒤집는 것으로 웃음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도 그것이 어찌 말처럼 쉬울까. 폼 나는 분위기를 갖고 있던 정보석이 어리버리 한 정보석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하고, 상큼 발랄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황정음이 심지어 떡실신녀가 되는 모습에서 이순재가 솔선해 보여주는 연기자의 길을 엿보게 되는 것은 과장된 것일까. 심지어 감동마저 주는 연기자 이순재의 네버엔딩 변신스토리는 작금의 연기자들에게 어떤 하나의 길을 제시해 보인다. 그것은 바로 연기자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