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1박2일'이 리얼 예능의 1인자가 된 이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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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이 리얼 예능의 1인자가 된 이유

D.H.Jung 2009. 11. 3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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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예능의 판타지와 현실을 모두 담아내다

비행기를 타고 또 배를 타고 그것도 모자라 버스를 타고 들어간 거문도. 실로 걷던 이를 멈추게 할 만큼 아름다운 거문도 등대에서 바라보는 풍광. 그 풍광 아래서 한바탕 포복절도의 복불복을 하는 멤버들. 아마도 이 카메라 앞에서의 장면만을 보여주었다면 그들의 '1박2일'이 어쩌면 일반인들을 꿈꾸게 만드는 판타지로 다가왔을 지도 모른다. "저렇게 놀면서 돈 벌면 참 좋겠다." 혹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지도 모른다. "저희들끼리 웃고 떠드는 걸 왜 우리가 보고 있어야 하지?"

하지만 적어도 '1박2일-거문도 등대'편을 본 시청자라면 적어도 이런 얘기는 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차가 들어가지 않는 거문도 등대에서의 촬영을 위해 8톤이 넘는 짐을 손수 이고 지고 나르는 그 장면이 카메라 앞의 판타지에 숨겨진 뒤편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광경에서 '예능고도'라는 자막은 꽤 적절하다. '차마고도'의 이국적인 그 풍광들 뒤에는 그 아름다운 장면을 잡아내기 위해 때론 목숨을 거는 제작진들의 지독한 현실이 있다.

"이건 말도 안돼." 그들이 무거운 짐을 낑낑 짊어지고 가면서 쏟아내는 이 말이 아마도 대부분의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현실일 것이다. 이것은 '1박2일'처럼 야생을 표방하며 전면에 생고생을 내세우거나 '무한도전'처럼 매번 힘겨운 도전에 직면해야 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물론이고, '패밀리가 떴다'처럼 가족적이고 즐거운 여행을 표방하는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대부분의 현장으로 나가는 리얼 예능 프로그램들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그들은 이렇게 생고생을 하는 걸까. 그들이 하는 이른바 미션이라고 하는 것들은 물론 실제적인 것도 있지만, 때로는 허무맹랑한 것들도 있게 마련이다. '1박2일'이 오지로 여행을 떠나고 그 곳의 풍광을 소개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심지어 끼니를 거르거나 하룻밤 노숙을 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복불복은 그 자체가 어떤 실제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목적은 단 하나, 재미다.

과거적인 노동의 가치관이라면 이 재미와 즐거움에 목숨을 거는 프로그램이 이해가 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1박2일'이 보여주는 세계는 이른바 '드림 소사이어티'의 징후를 그대로 그려낸다. 우리는 무형적인 즐거움을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니 이것은 기본적으로 즐거움과 웃음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갖고 있는 이중적인 모습이다. 그 앞에서는 웃음이 넘치지만 그 뒤편을 보면 땀과 눈물이 배어있다.

하지만 그 괴리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종종 우리는 앞면이 전부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특히 '리얼'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기 때문에, 앞면 그 자체만이 실제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 앞면의 즐거움은 때론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논란의 심정적인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1박2일-거문도 등대'편이 의미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예능의 뒤편을 프로그램 속으로 잘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복불복이라는 예능적인 재미와 그 재미의 결과로서 그 즐거움을 만들어내기 위한 "말도 안되는" 제작진들의 노고를 직접 체험하게 한 점은 그래서 실로 절묘하다 할 수 있다.

'1박2일'이 리얼 예능으로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다. 리얼 예능이란, 리얼이 갖는 고통과 예능이 갖는 즐거움이 모두 공존하는 형식이다. 리얼 없는 예능은 진정성의 비판을 받기 마련이고, 예능 없는 리얼은 재미라는 예능의 근본을 저버렸다는 비판을 받게 마련이다. '1박2일'은 바로 이 리얼과 예능, 즉 예능의 앞면과 뒷면의 모든 모습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 1인자의 위치에 설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