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스타킹', 우리 시대 쇼의 자화상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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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킹', 우리 시대 쇼의 자화상

D.H.Jung 2010. 2. 6.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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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킹', 아주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한 쇼의 진화

1979년 MBC 인기 오락프로그램이었던 '묘기 대행진'. 인상 좋은 아저씨가 모자에서 연실 비둘기를 꺼냈다. 그 때마다 브라운관 앞에 앉은 시청자들은 탄성을 질렀다. 바로 1세대 마술사인 알렉산더 리, 이흥선 마술사다. 이 프로그램에는 송재철 관장이라는 초인간(?) 스타도 있었다. 그는 이륙하는 헬기를 80여 분 동안이나 멈추게 하고, 160톤짜리 보잉737기를 무려 38미터나 끌었다. 자기 배 위로 자동차를 지나가게 한다거나 입으로 자동차 끌기, 쌀 한 가마니 메고 달걀 위 달리기는 오히려 쉬워 보였다. 무엇보다 이 스타의 매력은 가끔 격파를 실패하기도 하는 그 인간적인 데 있었다. 볼거리만으로도 충분했던 시절, 이주일이 무대 위에만 오르면 강박처럼 "뭔가 보여주겠습니다"하고 말하던 시절, 이른바 쇼의 시대였다.

하지만 이흥선 마술사와 송재철 관장의 시대는 조금씩 저물었다. '묘기대행진' 같은 프로그램들이 묘기를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실제 서커스단과 곡예단은 조금씩 설 자리를 잃었다. 동춘 서커스단이 해체 위기에까지 갔던 것은 TV라는 매체가 매일같이 쏟아내는 엄청난 볼거리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특별한 볼거리가 너무나 많아지면서 쇼의 시대도 저물었다. 차돌을 깨고, 입으로 차를 끄는 차력이나, 비둘기를 모자에서 꺼내는 마술은 더 이상 대중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무엇보다 카메라가 일상 속으로 뛰어드는 마당에 '한정된 공간에서 무언가를 보여주는' 전통적인 쇼라는 형식은 힘을 잃었다.

이제 남은 건 보여주기 보다는 대화의 장으로서의 토크쇼와, 무대 밖으로 나가 현장의 리얼함을 스토리 형식으로 담아내는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전부다. 이런 시대, 말 그대로 '무언가를 보여주는' 쇼가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스타킹'이다. 물론 '스타킹'의 시작은 'UCC의 프로그램화'에서 비롯됐다. 특별한 UCC의 주인공들이 무대 위로 초대되어 자신들만의 장기를 보여주고, 출연진으로 앉아있는 스타들이 이들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는 아이디어는, 인터넷이라는 매체에 의해 "이젠 나도 스타"를 외치게 된 달라진 세태를 제대로 포착해냈다.

하지만 과도한 경쟁의식에 의한 무리한 볼거리에 대한 집착은 이 프로그램의 훌륭한 초심을 흐려놓았다. 몇몇 아이템들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진 것은 과도한 의욕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계속 식상하지 않은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해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논란의 논란을 거쳐 '스타킹'은 제작진까지 교체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이 난관을 넘어서는 지점에서 '스타킹'의 달라진 면모가 드러난다. 그것은 한 때 우리 눈을 매료시켰지만 늘 반복적인 아이템과 비슷한 연출로 인해 사라져갔던, '무언가 보여주는 전통적인 쇼'의 현재적인 실험이다.

달라진 '스타킹'에는 과거 이흥선 마술사가 대중들의 입을 다물어지지 않게 했던 것처럼, 신세대 마술사 최현우가 출연해 출연진들이 가까이서 보는 와중에 동전을 둘로도 만들고 사라지게도 하는 마술을 선보인다. 그런데 과거와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 그것은 최현우 마술사 스스로 어떤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자신의 마술에도 어떤 이야기를 끼워 넣는다는 점이다. 똑같은 마술이라도 묵묵히 보여주기만 하던 시대에서, 이제 이 신세대 마술사는 출연진들과 대화를 나누며 마술을 선보인다. 때론 애프터 스쿨의 가희나 티아라의 효민이 마술을 보조하기 위해 무대 위에 올라서기도 하는데, 그녀들의 섹시한 이미지는 마술의 매력을 부가시킨다.

'특별한 볼거리'에 대한 범주의 확장 또한 특기할만한 점이다. 초창기 '스타킹'은 춤이라던가 노래, 웃음, 외모처럼 흔히 '무대 위에서의 특별함'을 소재로 한정지은 점이 있다. 이러한 외관에 집중하는 소재는 다름 아닌 '스타킹'이 비판의 불씨를 가지게 되었던 원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스타킹'은 '일상 속에서의 특별함'으로 그 소재를 넓혔다. 약수터에서 돌을 손바닥으로 쳐 건강을 유지한다는 약수터 건강킹 봉화산 때려맨이나, 불편한 몸으로 그저 아들을 위해 엄마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출연했다는 '앉은 꽃 예숙씨', 그리고 일을 하다가 스티로폼 쌓기의 달인이 된, '평택 이반장' 같은 인물들은 바로 그 일상 속에서 발견한 특별함을 갖고 '스타킹'에 나온 인물들이다.

이러한 '일상 속의 특별함'이 쇼로서 가능한 것은 그것이 갖는 독특한 이야기성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나 '생활의 달인'이 다큐의 형식으로 그 독특한 이야기성을 통해 프로그램화되는 것처럼, '스타킹' 역시 이들의 이야기를 쇼의 형식으로 프로그램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획 아이템으로 '스타킹'이 신년과 함께 내놓은 '숀 리의 다이어트 킹' 같은 코너는 이러한 스토리텔링을 갖게 된 '스타킹'으로 인해 가능해진 것이다. 한정된 기간 동안 살을 빼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이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한 아이템은 작금의 쇼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소소할 수 있는 일상이 이야기를 갖고 특별해질 수 있는 데는 '스타킹'만의 독특한 시스템 때문이다. 평범할 수 있는 일반인이 올라올 때, 스타들이 기꺼이 그를 보조해주는 조연역할을 자처하는 것은 '스타킹'만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달라진 '스타킹'은 그 영역 역시 넓혀가고 있다. 어린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배드민턴을 잘 치는 '리틀 이용대 추찬'이 나오자 실제 배드민턴 스타 이용대가 출연하고,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은 '고딩 파바로티 김호중'이 출연했을 때 국립오페라단 소프라노인 이지은이 출연하는 식이다.

게다가 이를 담아내는 제작진들의 연출에 대한 노력이 이 볼거리를 더욱 빛나게 해준다. 통상적인 카메라가 스튜디오에서 고정된 위치에 머무르고 있는 반면, '스타킹'의 카메라는 끊임없이 무대를 휘젓고 다닌다. 스튜디오에서 ENG카메라가 유독 많이 활용되는 것은 그 현장감을 좀 더 생생하게 잡아내려는 제작진의 의도다. 심지어 스튜디오의 공간적 한계도 어떤 순간에는 무너져버린다. 스튜디오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스튜디오 천장에 닿을 듯한 스티로폼 16개를 들고 방청객석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굳이 찍는 장면은 스튜디오가 갖는 닫힌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제작진의 노력이 엿보인다.

이것은 쇼의 진화, 혹은 생존을 위한 안간힘이다. 일반인과 스타 사이의 벽을 깨고, 비전문가와 전문가의 벽을 깨며, 그저 볼거리에 머물지 않고 그 속에서 적극적으로 스토리를 끄집어내고, 스튜디오의 한계를 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그들에게 남다른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스타킹'은 이렇게 이 시대의 쇼에 대한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쇼는 늘 그래왔듯이 여전히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