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지붕킥’의 희비극에 담긴 시트콤의 고충 본문

옛글들/명랑TV

‘지붕킥’의 희비극에 담긴 시트콤의 고충

D.H.Jung 2010. 1. 2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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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 멀리서 보면 즐겁지만 가까이서 보면 슬프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오현경과 정보석이 눈밭에서 격투를 벌이는 장면을 멀리서 바라보는 노부부는 ‘러브스토리’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우리도 젊었을 땐 저랬었지”하며 흐뭇해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자막.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찰리 채플린.’ 이 말은 지금 희비극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를 하고 있는 ‘지붕 뚫고 하이킥’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준다. 희극과 비극은 멀리서 보느냐 가까이서 보느냐에 달린 것일 뿐, 서로 다른 삶의 현실을 다루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지붕 뚫고 하이킥’이 시트콤이냐 드라마냐는 정체성 논란이 나오는 것은 아무래도 시트콤은 역시 코미디여야 한다는 대중들의 바람이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붕 뚫고 하이킥’은 초반의 코미디 분위기에서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사각 멜로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서로를 사랑하게 된 정음과 지훈(최다니엘), 지훈을 바라보는 세경, 그리고 그런 세경을 바라보는 준혁(윤시윤)의 엇갈린 마음이 보는 이를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통상 두 가지 에피소드를 병치하는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있던 ‘지붕 뚫고 하이킥’은 이제 하나는 전형적인 코미디를,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이들의 멜로를 병치시키곤 한다. 이 희비극의 교차가 가져오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 그것은 적절한 균형만 맞춰진다면 희극과 비극 양쪽을 모두 강화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웃음 속에서 발견하는 눈물, 눈물 속에서 찾아지는 웃음은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균형을 맞췄을 때의 이야기다. 이 시트콤의 멜로가 코미디와 이질적이지 않게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은 그 전개에 있어서 적당한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초반부 세경에게 마음을 전하는 준혁은 멜로 특유의 가슴앓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가르쳐주기 위해 저 스스로 안하던 공부를 하는 그 모습을 통해서였다. 정음과 지훈의 사랑은 불꽃처럼 타오른 것이 아니라, 늘 툭탁거리며 싸우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유일하게 진짜 멜로의 틀로 사랑을 보여준 이는 세경이었다. 그녀는 이 시트콤에서 정극을 연기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하지만 멜로가 무르익으면서 지훈에 의해 상처를 입는 세경과, 그런 세경을 점점 안타깝게 바라보는 준혁이 전면에 드러나면서 이 시트콤은 때론 웃음보다 눈물을 더 많이 보여주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쿨한 관계가 조금씩 사라지고 인물들이 서로 끈끈해지기 시작하자, 이제 시트콤으로서의 거리두기는 가끔씩 그 선을 넘는다. 채플린이 말한 대로 멀리서 바라봐야 할 시선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의 마음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한 것.

이것은 시트콤의 새로운 실험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간 시트콤은 드라마가 아닌 예능의 하나로 치부되며 폄하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이 시트콤의 코미디와 드라마를 넘나드는 희비극의 형식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러한 편견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처럼 코미디에 멜로가 깊숙이 자리하게 된 데는 더 단순한 이유가 자리하고 있다. 한마디로 멜로가 코미디보다 쉽다는 것이다.

정음과 지훈, 세경과 준혁의 안타까운 멜로의 에피소드들을 보면 기본적인 구도의 틀이 완성된 위에서 계속 변주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목도리라는 오브제는 이 멜로가 생겨나고 깊어져가는 과정에서 꽤 여러 번 사용되었고, 무심한 지훈과 그에게 상처받는 세경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준혁의 에피소드도 계속 반복되었다. 이것은 멜로의 틀이다. 구도의 완성, 상황의 반복을 통한 감정의 몰입.

하지만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로 웃음을 만들어내야 하는 코미디는 상황이 다르다. 그것은 전적으로 아이디어에 의해 좌우되는 것들이다. 게다가 매일 방영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이 시트콤이 짊어져야 하는 짐의 무게를 가늠하게 만든다. 매일 같이 새로운 상황의 웃음 코드를 뽑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러니 멜로는 물론 이 시트콤의 별미 같은 맛을 주지만, 또한 어쩌면 이 시트콤 제작자들에게는 겨우 숨 돌릴 수 있는 여지를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많은 드라마 작가들은 말한다. 사실 웃음을 만드는 것이 눈물을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그래서 시트콤에 대한 낮은 시선을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지붕 뚫고 하이킥’이 가진 희비극이 말해주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웃음은 멜로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 시트콤은 드라마와 비교해 절대 쉽거나 가치가 떨어지는 작업이 아니다. 드라마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제작비로 매일 편성되어 지옥 같은 제작의 고통을 감내하게 만드는 그 시선에도, 마치 시트콤을 하나의 그저 그런 쉬운 작업으로 바라보는 그 낮은 시선이 들어가 있는 건 아닐까.

황정음의 신종 플루 감염으로 '지붕 뚫고 하이킥'이 한 주를 스페셜로 대체한다고 한다. 물론 이 시트콤의 한 팬으로서 한 주의 안타까움이 있지만 어쩌면 이것은 열악한 제작여건 속에서도 끝없이 달리기만을 종용받아온 이 시트콤에 작은 재충전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나의 시트콤이 드라마 이상의 대중적 지지도와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 ‘지붕 뚫고 하이킥’. 그 희비극 속에 담겨진 고충을 이제는 이해해야할 때도 온 것 같다.

오현경과 정보석이 사투를 벌이는 그 장면을 멀리서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음 짓는 노부부처럼 우리는 어쩌면 전쟁 같은 제작현장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은 채,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며 편안하게 웃음 짓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채플린의 말처럼, 시트콤의 제작여건도 마찬가지다. 멀리서 보면 즐겁게만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슬픈 현실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