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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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막장드라마가 국민드라마? 국민이 막장인가

D.H.Jung 2010. 3. 1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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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이 국민이 되는 시청률 지상주의의 폐해

끊임없는 막장 논란을 가져오고 있는 '수상한 삼형제'에 대해 진형욱 PD는 "이 작품은 비난받을 이유가 없는 드라마"라고 밝혔다고 한다. 진 PD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 드라마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작가가 쓰는 드라마"이며 "평범한 위기나 너무나 편안한 일상만 펼쳐진다면 드라마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 안내상은 "시청률 40%를 기록하면 국민드라마가 아니냐"며 막장이라고 평가받는 것은 이 "드라마가 불편한 이야기를 건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가 지금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다. '하늘이시여'는 끊임없는 논란의 도마 위에 올라섰지만 시청률은 40%를 훌쩍 넘어섰다. '별난 여자 별난 남자'도 각종 논란에 휩싸였지만 3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들 드라마들이 시청률 고공행진을 기록한다고 해서 '국민드라마' 운운하고 나온 적은 없다. '수상한 삼형제'가 시청률을 내세워 국민드라마 운운하는 상황까지 온 것은, 시청률 지상주의 속에서 그만큼 자극에 둔감해진 드라마 제작 행태의 일면을 드러내는 것 같다.

무엇이 막장이냐에 따른 정확한 기준은 없다. 다만 대중들의 정서가 그것을 막장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에 달려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어떤 요소들이 막장의 징후로 받아들여지는가 하는 것은 대충 짐작될 수 있다. 대체로 막장은 윤리적인 측면에서의 막장과 완성도의 측면에서의 막장으로 나뉘어진다. 얼개가 느슨한 것은 완성도가 막장이라는 것이며, 소재가 지나치게 자극적인 것은 윤리적인 막장이란 얘기다.

'수상한 삼형제'는 얼개가 그다지 느슨한 드라마는 아니다. 따라서 완성도 측면에서 이 드라마를 막장이라 부르기는 어렵다(물론 비정상적인 관계들은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측면에서 막장으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하지만 윤리적인 측면을 보면 지나치게 자극적인 상황으로만 몰고 가는 드라마의 행태가 막장 논란에서 자유롭기가 어려워진다. 즉 '수상한 삼형제'의 막장 논란은 좋은 필력을 가진 작가가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기보다는, 시청률을 얻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자극적인 상황을 적재적소에 넣고 빠지는 것을 반복하는데서 나온 것들이다.

'수상한 삼형제'는 지금껏 흘러온 것을 보면 작가가 캐릭터 게임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캐릭터를 하나씩 끄집어내 자극적인 관계들을 얽는 것으로 극성을 올리고, 어느 순간 그 힘이 빠지면 다른 인물로 넘어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물론 그것이 파편화되는 현재가족의 모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일만큼 이 드라마는 진정성이 엿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시청률을 향해 달려가는 듯한 인상이 강하다는 이야기다.

이즈음에서 국민드라마라는 호칭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막장드라마가 시청률을 갖고 국민드라마라고 주장하는 상황은, 이 사뭇 달라 보이는 두 용어 사이에 근본적으로 시청률 지상주의라는 같은 조건이 상응하기 때문이다. 일정한 시청률을 넘긴 드라마를 흔히 우리는 '국민드라마'라고 부른다. 그만큼 많이 봤다는 뜻이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 '국민'이라는 호칭이 붙여지는 분야는 드라마뿐만이 아니다. '무한도전'이나 '1박2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국민예능'이라 불려지고, '해운대' 같은 1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는 '국민영화'라고 부른다. 국민배우, 국민가수, 국민여동생, 국민남동생, 국민개그맨... 이제 '국민'이라는 호칭은 조금 잘 나가는 장르나 연예인들에게 붙여주는 왕관 같은 것이 되었다.

잘 나가는 드라마나 예능에 '국민'이라고 붙여준 들 무슨 상관일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국민'이라는 호칭이 야기하는 집단적이고 강박적인 사회 분위기는 그다지 유쾌한 것이 아니다. 사실 시청률 50%나 관객 수 1천만이 정상적인 수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온 국민의 반이 같은 드라마를 보고, 국민의 다섯 명 중 한 명이 같은 영화를 보는 사회를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시청률 지상주의 속에서 막장드라마가 국민드라마라고 한다면, 그 말은 국민이 막장이란 얘기인가. 막장드라마가 국민드라마라고 말해지는 상황 속에서 드라마에 국민을 호명하는 이 상황도 그다지 유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청률만 높으면 다 용서된다는 이 상황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