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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해피냐 새드냐, 왜 엔딩에만 몰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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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결과보다 중요한 건 과정이다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은 끝났지만 엔딩에 대한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모른다. '지붕킥'의 엔딩은 실로 파격적인 면이 있다. 지훈(최다니엘), 세경, 정음, 준혁의 얽히고설킨 멜로가 어떤 식으로 마무리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지훈과 세경의 죽음'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해피엔딩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죽음'이라는 뉘앙스만으로 '지붕킥'을 그저 새드엔딩이라고만 단정할 수 있을까. 물론 죽음은 슬픈 것이지만, '지붕킥'이 그 죽음을 어떻게 보여줬는가도 중요하다. '지붕킥'은 사고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도 않았고, 그 사망 사실도 3년이 흐른 후 성장한 정음과 준혁(윤시윤)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주었다. 게다가 마지막에 세경이 "시간이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좋겠어요"하고 말하는 대사와 거기서 멈춰져 흑백 사진의 추억으로 바뀌는 장면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분명 이건 새드엔딩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깊은 여운을 남긴 아름다운 새드엔딩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이 엔딩에 몰두하느라 지금껏 '지붕킥'이 달려온 웃음과 감동의 시간들이 주는 의미에 대해 지나치게 소홀한 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엔딩은 수많은 마무리 중 하나의 선택일 뿐이다. 그것이 무엇이건 그 하나로 지금까지 걸어온 '지붕킥'의 길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가 아닌 이상 말이다. 혹자는 "이 마지막 엔딩 한 편으로 모든 걸 망쳤다"고까지 말하는데, 이건 지나친 결과지상주의적인 사고방식이다. 결과보다 중요한 건 과정이다.

결과에 대한 몰두는 자칫 결과만 좋으면 다 좋다는 식의 사고방식도 만들어낸다. 반 년 이상 지속되는 드라마에서 태반 이상을 자극적인 막장으로 끌고 오다가 결말에 이르러 해피엔딩을 한다고 해서 그런 막장드라마가 이해될 수는 없는 일이다. '천만번 사랑해'가 그랬고, 현재 '수상한 삼형제'가 그렇다. '수상한 삼형제'는 아예 막장인 가족을 설정으로 하고 그 집이 차츰 화해되고 봉합되는 과정을 그리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결과지향적으로 바라보면 납득이 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과정 자체로 바라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정된 시간에 끝나는 영화라면 모를까, 드라마는(특히 연속극은)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다.

이제 곧 '추노'가 종영한다. 벌써부터 그 엔딩에 대한 예측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붕킥'에 이어 '추노'도 새드엔딩일 것이라는 예상이다. 지금까지의 흐름 상 해피엔딩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새드엔딩이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지금껏 이 작품이 어떤 과정을 밟아 마지막까지 이르렀는가 하는 그 점이다. 해피엔딩이니, 새드엔딩이니 하는 것은 하나의 선택일 뿐, 그것으로 작품 전체가 바뀌지는 않는다. 아울러 엔딩에 대한 지나친 집중은 그것 하나로 과정 자체를 덮어버리려는 막장드라마들의 변명거리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도 그다지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