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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검사와 공주, 둘 다 하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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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프린세스’가 일과 사랑을 다루는 방식

"나처럼 예쁘고 젊고 날씬한 여자가 좋다는데 왜 그렇게 튕겨요. 기분 나쁘게. 아니. 진짜로 진짜로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마혜리(김소연)는 순수하지만 개념이 조금 없다. 자식 딸린 홀아비인 윤세준(한정수)이 자신을 밀어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한다. 거기에 대고 윤세준이 한 마디 쏘아댄다. "한번 자고 싶단 생각은 들어. 그런 생각 들라고 이러고 다니는 거 아냐?" 늘 공주처럼 차려입고 다니는 마혜리를 에프엠 검사 윤세준이 이해할리 만무다. 거기에 대해 마혜리는 말한다. "나는 소중하니까요. 내 몸이, 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아니까요. 남이 뭐라든 남이 어떻게 보든 그따위 거 개나 물어가라고 그래요."

1백 킬로에 육박하는 몸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사실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 연인 관계였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의 그 참혹함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래서 피나는 노력으로 살을 뺀 자신의 몸이, 또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그래서였을까. 검사라는 직업을 얻게 된 마혜리에게 여전히 소중한 것은 조직도 아니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온 피해자도 아니다. 오직 자기 자신이다.

미니스커트 차림의 첫 출근에 진정선(최송현) 검사가 시정을 요구하자, "시정했어요. 어제 입었던 치마보다 1센티 길어요."하고 답하고, 6시면 칼퇴근 하는 마혜리를 윤세준 검사가 나무라자, "제가 왜 야근을 해야 돼요? 저 공무원이구요. 공무원 법정근무 시간 있구, 야근한다고 월급 더 나오는 것도 아닌데요?"하고 당당히 무개념의 말을 할 수 있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러니 적어도 그녀에게 있어서 자신은 '또라이'도 아니고 '능력 없는 사람'도 아닌 셈이다.

그녀는 검사라는 직업을 얻었지만 여전히 공주이고 싶어 한다. 그리고 윤세준의 말대로 그것이 그렇게 비난받을 만한 일도 아니다. 여성으로서 자신을 예쁘게 가꾸겠다는 것이 왜 나쁜가. 물론 그녀의 과한 자기애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만, 나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조직생활이 처음이고 상황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하지만 그녀는 윤세준 검사의 말처럼 "한 사람의 인생이 내 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자신의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공주로서의 삶과 검사로서의 삶은 부딪치기 시작하고, 그녀는 공주로서의 즐거움만큼 검사로서의 보람도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검사 프린세스'는 공주가 검사가 되는 성장 과정을 다루는 드라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주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윤세준 검사가 따라주는 와인을 함께 마시는 달콤한 꿈을 꾼다. 하지만 윤세준 검사는 3년 전 상처(喪妻)한 후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해 사랑에 담을 쌓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니 그는 어쩌면 마혜리와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지도 모른다. 그가 과거의 뚱뚱했던 마혜리가 겪었던 일과 그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피를 깎는 다이어트를 했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는 아마도 '자신을 아끼고 노력하고 이뤄내는' 마혜리를 진정으로 "멋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과거를 놔줘야 그 자리에 미래가 오는 거야." 윤세준 검사는 이렇게 말하지만, 정작 자기 스스로 "윤세준 니가 그런 말할 자격이 있냐?"고 되묻는 사람이다. 그는 여전히 과거 속에 있기 때문이다. '검사 프린세스'는 따라서 마혜리가 공주에서 검사가 되는 그 성장과정만을 다루는 드라마가 아니다. 이 드라마는 또한 과거의 고통 때문에 검사로서 만의 삶을 살아가는 윤세준이 다시 사랑을 해나가는 성장드라마이기도 하다. 그러니 마혜리의 성장드라마와 윤세준의 성장드라마가 겹쳐지는 지점은, 이 드라마가 꿈꾸는 세상이 검사와 공주 어느 한 쪽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검사와 공주. 이 두 존재는 여성의 입장으로 보면 일과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은 이 두 가치가 사실은 상충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충되는 것처럼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일을 위해 사랑을 희생시키고, 사랑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강요는, 마치 직장 내에서는 공기처럼 당연한 것처럼 떠다닌다. 또한 당당한 여성성으로서의 승부라기보다는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틀에서 승리하기 위해 남성화되어버리는 여성이 바람직한 것이 아닐 것이다. 물론 판타지로서 과장된 면이 있지만, 검사와 공주 둘 다를 희구하는 마혜리의 고군분투가 의미 있어 보이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