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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택연의 연기가 마음에 닿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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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도 강한 인상을 남긴 그의 진정성

"누야(누나) 너랑 같이 살았다." 많은 대사가 필요하지 않았다. '신데렐라 언니'의 한정우(택연)가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알려주는 걸로 그 한 마디면 충분했다. 고주망태의 아버지 밑에서 일찍이 도망친 그는 죽 홀로 살아왔지만, 오랜만에 드디어 만난 그 누나, 은조(문근영)와 늘 함께 살아왔다. 아마도 그것은 그를 버티게 해준 유일한 힘이었을 테니까.

'기다리다 지친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신데렐라 언니'에 택연의 등장은 더뎠다.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아이돌 가수의 연기는 어떨까. 그것도 짐승돌의 대표격인 그 거친 남성미의 택연이라면. 기대도 컸고 기대가 큰 만큼 섣부른 예단도 많았다. 그래서 야구방망이 하나 들쳐 메고 그가 대성도가에 발을 디뎠을 때, 우리는 그의 입에 주목했다.

하지만 은조 앞에 선 그는 말이 없었다. 은조가 스스로 자신을 알아보길 원했기 때문에 그는 가만히 그녀의 신발을 가지런히 돌려놓고 맑게 웃었다. 비틀거리는 그녀를 가만히 따라가면서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이 그가 한 전부였다. 그러다 결심한 듯 다가와 은조 옆에 앉았을 때, 은조는 일어서며 물었다. "혹시 내가 무슨 말을 못 듣던가요? 나한테 뭐라 했냐구요."

그는 부인했지만, 아마도 수없이 말을 건네고 있었을 것이다. 이 한동안 지속된, 대사 없이 바라보는 행위는 연기자 택연에 대한 선입견을 지워냈다. 대신 마음속으로 늘 은조와 함께 살아온 한정우라는 캐릭터를 그 자리에 세워두었다. 술도가 창고에 쓰러진 은조를 업고 "누야.. 니 뭐가 그리 힘드노?"하고 물을 때, 그녀 앞에서만 튀어나오는 사투리 속에 그의 진심이 보였다. 쓰러진 신을 가지런히 세워두는 그에게 그 신은 은조 자신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 복잡다단한 대성도가의 사람들 속에서, 늘 맑게 웃고 단순 명쾌해 보이는 한정우라는 캐릭터는 가만있어도 도드라져 보였다. 어쩌면 이 정우가, 새 아빠가 "뜯어먹을 게 있어 좋다"고 말하는 속물인 엄마와, 그런 엄마를 알면서도 받아들이는 새 아빠, 그리고 이제 '자기 것은 자기가 챙겨야 함을 알게된' 동생 효선(서우) 사이에 짓눌려 있는 은조를 구원해줄 인물처럼 보이는 건 그들과 상반된 그만의 단순 명쾌함 때문이다.

그래서 내내 웃음을 보인 적 없고, 늘 독을 품은 듯한 눈빛으로 잡아먹을 듯 사람을 대하던 은조가, 그가 그 어린 시절의 정우임을 깨닫고 처음으로 웃는 장면은 가슴이 서늘하다. 은조에게 웃음을 되돌려주는 존재로, 한정우라는 캐릭터는 그렇게 서게 되었고 그런 만큼 택연이라는 연기자는 뒤로 숨었다.

연기자가 사라지고 캐릭터가 남는 경험은 아마도 택연이라는 초보 아이돌 연기자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운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짜 연기의 시작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