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으로 모든 걸 투영해 내는 김수현 드라마
"당신 오늘부터 앉아서 싸." 김민재(김해숙)의 딸 양지혜(우희진)가 남편인 수일(이민우)에게 하는 이 말은 작금의 달라진 남녀 관계를 압축해서 설명한다. 수일은 과거라면 데릴사위로 있는 처지에, 차에서 내리는 딸의 문까지 열어줘야 할 정도로 아내인 지혜를 여왕 대접해준다. 물론 투덜대지만 늘 자신의 처지보다는 아내와 아내의 가족을 먼저 돌보는 그 마음에는 어느 정도의 진심도 엿보인다. 덜컥 갖게 된 둘째 아이에 기뻐하는 그지만, 그 아이를 지우려는 아내와, 그걸 반대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그는 아내 편임을 공공연히 드러낼 정도로 애처가다. 그에게서 과거 마초적이고 권위적인 남편의 모습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 사위에 그 장인이라고, 수일의 장인 양병태(김영철)는 딸이 사위에게 앉아서 일을 보라고 했다는 말에 허허 웃는다. 오히려 장모인 김민재는 그런 사위를 안쓰러워 하지만, 양병태는 반 농담을 섞어서 "잔뜩 긴장하며 보기 때문에 (자신은) 한 방울도 떨어뜨리지 않는다"고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준다. 한편 그런 수일을 "네가 남자냐?"고 비아냥대는 병태의 동생 양병걸(윤다훈)은 언뜻 남자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 같지만, 그가 사실은 가족드라마에 늘 있게 마련인 감초 같은 수다쟁이 역할을(주로 여성이 맡게 마련인) 맡고 있다는 점은 역시 이 달라진 남녀 관계를 잘 드러내준다. 무엇보다 이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인 할아버지(최정훈)가 돌아온 탕자(?)가 되어 아내(김용임)의 눈치를 보고, 집에 도둑고양이처럼 숨어 있다가 오줌까지 지리는 장면은 가부장주의 시대의 종언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인 양병태가 패밀리 비즈니스로서 펜션을 운영하고, 그 아들인 호섭(이상윤)이 그 일을 돕는 모습은 취업이 어려워진 두 세대(고령세대와 젊은 세대)의 새로운 대안처럼 그려진다. 집 밖으로 치열해진 취업 전쟁에서 이제 남자들은 집 안으로 돌아와 자신들의 할 일을 찾아낸 것 같은 뉘앙스가 거기서 느껴진다. 이 집에서 가장 잘 나가는 병태의 동생 양병준(김상중)은 리조트 상무로 지내지만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못한 상태고, 병태의 아들 양태섭(송창의)은 내과의사지만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는 동성애자다. 물론 동성애는 파격적으로 보이지만 이 남성성이 사라져가고 있는 가족을 염두에 두면, 이 동성애 또한 그다지 부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이 '인생은 아름다워'를 통해 김수현 작가가 그려내는 남자들은 작금의 변화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의 남자들의 모습을 저마다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성 소수자까지도.
한편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의 모습 또한 달라졌다. 젊은 시절 온갖 마음고생을 다해온 할머니는 이제 이 집안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로 우뚝 서 있고, 며느리 김민재는 여전히 부엌을 꿰차고 있지만, 그 부엌은 가사 일만의 공간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그녀가 요리방송을 하는 모습은 부엌이라는 공간을 사회적으로 확장시킨 결과로 보인다. 그녀는 가족에게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지위를 가진 당당한 엄마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녀의 딸인 양지혜는 자신의 삶을 위해, 생긴 아이를 지울 것이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자기주장이 강하며, 막내딸인 양초롱(남규리)은 "어장에 물 반 고기 반"이라고 말하며 남자들을 저울질 할 줄 아는 대학생이다.
이처럼 김수현 가족드라마의 가족들은 저마다 변해가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대변한다. '엄마가 뿔났다'에서 안식년을 주장하는 엄마가 등장하고, 로맨스 그레이를 즐기는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것처럼, '인생은 아름다워'에 동성애자가 등장하고, 그를 사랑하는 재일교포 채영(유민)이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다양해진 사회 구성원의 모습을 담아낸다. 이것은 김수현 가족드라마가 현실의 변화에 민감하면서도 오래도록 고정적인 팬층을 이어가게 해주는 가장 큰 힘이다. 즉 현재 변화된 사회의 모습을 그 가족 구성원들 속으로 담아냄으로써, 그 파격을 보편적인 가족애로 전해주기 때문이다.
도무지 해결될 수 없을 것만 같은 파격적인 갈등도 그 가족애 속에서는 해결의 실마리를 보인다. 평생을 다른 여자와 살아온 남편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또 금지옥엽 키워낸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것은 사회적인 잣대로 보면 해결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틀로 바라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족애로 대변되는 인간애. 그 굳건한 믿음 앞에 김수현 드라마의 가족은 사회 문제를 풀어내는 마력적인 힘을 발휘한다. 이것은 김수현 가족드라마가 왜 그토록 인기가 있는가 하는 질문에 일단의 답을 제공한다. 우리는 '김수현의 가족'에서 우리의 문제를 발견하고, 그 가족의 갈등과 해결을 통해 큰 위안을 얻게 된다. 우리는 매번 김수현의 드라마가 구성하는 가족을 통해 공감의 틀로 묶여지는 일체감을 경험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넓은 범주의 가족의 경험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옛글들 > 드라마 곱씹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검사와 공주, 둘 다 하면 안돼? (3) | 2010.04.21 |
---|---|
우리시대의 동성애, 어떻게 변해가고 있나 (6) | 2010.04.20 |
'신데렐라 언니', 세상의 악역을 위한 동화 (5) | 2010.04.16 |
이병훈과 김수현, 그들이 거장인 이유 (2) | 2010.04.14 |
명랑사극 '동이'가 꿈꾸는 통하는 세상 (4) | 2010.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