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제빵왕 김탁구', 그 이유 있는 독주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제빵왕 김탁구', 그 이유 있는 독주

D.H.Jung 2010. 7. 1.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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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의 시청률이 30%를 넘었다. 새롭게 시작하는 수목드라마들에 대한 애초 기대감으로 보면 의외의 결과다. '나쁜 남자'는 '선덕여왕'에서 비담으로 특유의 까칠한 아우라를 선보였던 김남길의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고, '로드 넘버 원'은 전쟁이라는 다이내믹한 소재에 100% 사전제작드라마, 게다가 소지섭, 김하늘의 출연작으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지금 현재 '나쁜 남자'와 '로드 넘버 원'은 한 자리 수 시청률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을까.

먼저 이들 드라마들이 가진 주요 타깃 시청층을 그 첫 번째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제빵왕 김탁구'는 7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드라마로서 4,50대 이상의 기성세대들에게 익숙하다. 통속극으로서의 익숙한 소재들과 코드들이 전면에 배치되면서 시선을 끌었고, 막장에 가까운 자극적인 내용들은 그러나 빠른 전개를 통해 식상함을 넘어섰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통속극의 익숙함이 아니라 이 익숙함 위에 얹어놓은 김탁구의 성장드라마다. 전반부의 강한 통속적인 이야기로 기성세대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면 이제 성인이 된 '제빵왕 김탁구'는 성장드라마의 대결구도로 비교적 젊은 세대들의 시선까지 붙잡고 있다.

반면 세련된 영상미와 절제된 스토리로 한 파괴된 남자의 외로운 복수를 담아내고 있는 '나쁜 남자'는 안타깝게도 월드컵 방송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거의 한 달여 간의 결방은 드라마의 몰입도를 떨어뜨렸고, 그것은 복수극과 멜로가 적절히 섞여진 '나쁜 남자'로서는 가장 큰 악재라고 할 수 있다. 나쁜 남자라는 트렌디한 캐릭터를 내세운 점이나, 일드를 보는 것 같은 잘 짜여진 대본, 게다가 현대사회가 가진 속물근성을 끄집어내고 조롱하는 그 속 시원한 메시지까지 이 드라마는 완성도가 높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작품도 월드컵 편성의 벽은 너무 높았다.

한편 '로드 넘버 원'은 기대감과 우려가 교차했던 작품. 이것은 한국전쟁이라는 소재가 가진 태생적인 한계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남아있는 반공세대들의 한국전쟁에 대한 트라우마는 이 작품을 시작 전부터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간 드라마로서는 한동안 다루어지지 않았던 소재라는 점에서 기대감도 만들었다. 하지만 제작진들 역시 이런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듯하다. 초반 2회분을 전쟁 자체보다는 멜로에 집중했고, 그러자 전쟁드라마의 기대감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감정선이 얹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과도하게 빠르게 진행된 멜로의 속도도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3회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전투신과 중간 중간 삽입되는 인물들의 아픈 이야기들은 '로드 넘버 원'이 가진 진면목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강제징집을 하는 국군과 징집당하지 않기 위해 도망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전투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 짧게 인서트로 삽입되는 그 인물의 기억에 남는 장면들은 이 작품이 가진 휴머니즘을 그대로 드러낸다.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는 인간의 모습과, 그 속에서도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잘 표현된 것. 하지만 전쟁이라는 소재 자체가 가진 한계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수목 드라마 세 작품이 가진 성향을 들여다보면 작금의 대중들은 절망적인 과거보다는 희망적인 미래를 보기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거의 절망적인 경험 때문에 현재까지 파괴된 삶을 살아가는 '나쁜 남자'도, 또 한국전쟁이라는 잊지 말아야할 우리네 트라우마보다도, 아무리 막장인 삶 속에서도 그걸 이겨내고 성장하려는 탁구(윤시윤)에 더 몰입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제빵왕 김탁구'의 독주는 물론 작품 내적인 힘, 즉 통속극에 성장극을 엮은 그 힘이 가장 큰 이유이고, 월드컵이라는 변수와 전쟁 소재가 가진 민감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희망적인 메시지도 분명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