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나쁜 남자', 왜 매력적일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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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남자', 왜 매력적일까

D.H.Jung 2010. 7. 7.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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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남자', 위선적인 세상을 뒤집다

세상은 얼마나 위선적일까. 가진 자들은 뭐든 손만 뻗으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고, 불필요하다면 언제든 버릴 수 있지만, 그렇게 돈으로 산 세계에 진심은 남아있지 않다. 그저 행복한 척 웃고 있지만 사실은 거래에 가까운 삶을 그저 버티고 있을 뿐. 그렇다면 '나쁜 남자'가 그려내는 못 가진 자들은 어떤가. 늘 가진 자들에게 당하는 순박한 존재들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도 못 가진 걸 갖기 위해 가진 자들 앞에서 가면의 사랑을 서슴없이 하는 존재들이다. '나쁜 남자'는 그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가진 자들의 품속에 억지로 던져져 홍태성이란 이름으로 살 뻔했으나, 곧 버려지면서 심건욱(김남길)이란 괴물이 탄생했다. 심건욱이 누군가의 위험한 대역을 대신하며 살아가는 스턴트맨이라는 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런데 심건욱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버린 해신그룹 홍회장(전국환)의 가족들에게 접근해서 하려는 복수극이 남다르다. 그는 폭력으로 물리적인 상처를 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당한 것처럼 그들에게 치유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남기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가면의 사랑'이다. 그는 해신그룹의 막내딸인 홍모네(정소민)의 마음을 뒤흔들고, 동시에 장녀인 홍태라(오연수)에게 접근한다. 심건욱이 그토록 쉽게 그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위선적인 세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홍모네는 이 돈 냄새와는 상관없는(관심이 없는) 야성적인 남자에게 빠져들고, 홍태라는 정략결혼이라는 진심 없는 삶 속에서 이 거침없는 남자에게 흔들린다.

한편 심건욱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홍태성(김재욱)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 한다. 이 상황에 갑자기 이들 사이에 나타난 문재인(한가인)이 의도적으로 홍태성(사실은 심건욱)에게 접근할 정도의 속물근성을 갖고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러나 그녀는 심건욱이 진짜 홍태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그의 진심에 끌린다. 하지만 유리가면을 구하기 위해 간 일본 출장에서 진짜 홍태성을 만나게 되면서 문재인의 마음은 갈등을 일으킨다. 가난한 진심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위선이라도 화려함을 택할 것인가. 이 양 갈래 사이에 놓인 이 드라마의 멜로는 따라서 심건욱이 하려는 복수와 그대로 맞닿아 있다. 그녀가 돈이 아닌 진심을 선택하는 순간, 심건욱은 어쩌면 구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진정한 복수가 될 지도.

유리가면을 홍태성이 제 어머니 앞에서 복수하듯 집어던져 깨뜨릴 때, 순간 이 모든 가면의 상황들을 깨져버리고 제 모습을 드러낸다. 홍태성에게 "네가 그렇게 깨뜨릴 물건이 아냐"하고 대드는 문재인에게 오히려 뺨을 올려 부치며 "네가 뭔데, 선을 넘어오는 거야?"하고 말하는 신여사(김혜옥). 그만큼 위선의 세계는 견고한 듯 보이지만, 던지면 쉽게 깨져버리는 유리가면처럼 약하기 그지없다.

'나쁜 남자'가 매력적인 것은 이 자본 위에 세워놓은 세계의 위선과 속물근성을 이 심건욱이라는 사내가 적나라하게 헤집어놓는 통쾌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문재인이 끈이 떨어진 자신의 백을 맨 채, 명품 백을 바라보는 장면이나, VVIP고객을 위한 홍보용 콜렉션인지도 모르고 신여사에게 선물로 받은 옷을 돈 때문에 환불하는 장면에는, 자본이 만들어놓은 부에 대한 선망과 속물근성에 대한 혐오가 뒤섞여 있다. 이것은 남녀 간의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사랑은 과연 진심인가, 아니면 또 다른 속물근성의 하나인가. '나쁜 남자'는 지금 이것을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가 '나쁜 남자'인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없는 척 쓰고 있는 유리가면을 그가 거침없이 벗겨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