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신파²이 아닌 사랑과 욕망의 방정식
MBC 수목 드라마, ‘90일, 사랑할 시간’은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현지석(강지환 분)이 죽기 전 세 달 동안 옛 애인과 사랑을 나눈다는 설정의 이야기다. 현지석과 그의 옛 애인 고미연(김하늘 분)이 각각 결혼을 한 유부남, 유부녀라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불치병 코드에 불륜 코드까지 뒤섞여 있는 셈이다. 어느 하나만 소재로 잡아도 신파의 혐의가 짙어지는 이 드라마. 그래서 이 드라마는 두 개의 자극적인 소재를 합쳐 두 배의 신파극을 연출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 만일 신파로 끌고 가려 했다면 불륜이나 불치의 코드는 더 많이 가려지고 숨겨졌어야 옳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일찍부터 현지석과 고미연의 불치, 불륜의 이야기를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현지석의 아내, 박정란(정혜영 분)과 고미연의 남편, 김태훈(윤희석 분)에게 드러내놓는다. 따라서 드라마는 불륜과 불치가 이끄는 신파로 흐르지 않고 이 극한적 상황, ‘90일, 사랑할 시간’이란 실험대 위에 올라선 ‘네 인물의 사랑과 욕망 방정식’을 보여준다.
사랑이냐 욕망이냐 그것이 문제
프로이트는 <쾌락원리를 넘어서>에서 욕망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대상은 죽음뿐이라고 했다. 이 말은 이런 말도 된다.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건 욕망이지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다. 욕망은 미망이고 허상이다. 하지만 그것이 실재가 아니기에 우리는 또한 살아가게 된다. ‘90일, 사랑할 시간’이 네 명의 등장인물에게 제시하는 건 바로 이 죽기 전 남은 90일 간의 시간이다. 그들에게 갑작스레 던져진 이 시험은 그들을 사랑과 욕망 사이에서 방황하게 만든다.
현지석은 죽음이 다가오는 걸 느끼는 그 순간,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다고 느낀다. 남은 시간이라도 제대로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고미연에게 달려간다. 그런데 그것은 과연 그가 바라던 사랑이었을까. 막상 고미연을 만난 그는 그것이 사랑인지 욕망인지 헷갈리게 된다.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 가만 내버려두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 한 순간이라도 진정한 사랑을 불태워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고미연 역시, 자신에게 헌신적인 남편 태훈을 버리고 현지석에게 달려간다는 것이 욕망인지 사랑인지 알 수가 없다. 이것은 정란이나 태훈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남편과 아내가 사랑한 사람이 자신이 아닌 타인이었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 그렇다고 얼마 남지 않은 삶, 이미 진실도 알아버린 상황에 그들을 붙들고 있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혹시 그건 자신의 욕망일 뿐 아닌가.
당신은 정말 잘 하고 있나요
현지석과 고미연은 자신들을 붙들고 있는 현실에서 도망치려하는 중이고, 정란과 태훈은 자신들을 떠나려는 현실을 붙잡아매려는 중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고민한다. ‘과연 내가 제대로 잘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이로써 드라마는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얄팍하고 깨지기 쉬운 것인가를 보여준다. 극화된 것은 우리의 긴 삶을 90일이라는 시간에 가둔 것뿐이지만 그것은 또한 우리 삶 속에서의 사랑과 욕망이라는 주제로 의미가 확장된다. 그들은 거기 욕망이 있다고 생각하면 달려갈 것이고, 그 욕망이 충족되는 순간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그 욕망으로서 살아간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면 이 네 사람의 사랑과 욕망 줄다리기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죽음뿐이다. 이 방정식을 통해 드라마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것 같다. 당신은 정말 잘 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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