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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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24부작이 짧다

D.H.Jung 2006. 12. 21.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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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 메이드 사극, ‘황진이’

KBS 수목드라마 ‘황진이’가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총 24부작에 이제 3부만을 남겨놓은 ‘황진이’. 그런데 왠지 그 24부작이 짧게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물론 그렇다고 조금 시청률이 된다는 드라마들이 으레 해버리는 연장방영이 아쉽다는 말은 아니다. 24부작이 짧다는 것은 저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 올해의 좋은 드라마로 뽑았던 ‘연애시대’에서 보았던 ‘웰 메이드 드라마’의 징후를 ‘황진이’에서 보기 때문이다.

사극의 핵심은 아무래도 그 대결구도에 있다 할 것이다. 그것은 모든 신화와 설화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영웅이 되는 주인공이 있고 그 주인공이 걸어갈 길에 고난이 자리잡는데, 그것을 드라마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쟁자가 있어 대결구도를 이루기 때문이다. ‘황진이’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처음 황진이는 주변에 적이 산재해 있다 할 정도로 많았다. 매향(김보연 분)과 부용(왕빛나 분)은 물론이고, 벽계수(류태준 분), 심지어는 스승인 백무(김영애 분)까지 적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황진이’의 후반부에 이르러 이 대결구도가 지향하는 바가 그들 개인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백무의 죽음을 통해 황진이는 스승과 화해하고, 또한 그 죽음은 매향의 마음을 열게 만든다. 김정한(김재원 분)의 죽음을 막아보려는 황진이의 노력 속에서 이제는 부용과 벽계수까지 조금씩 얼었던 마음이 녹게된다. 대부분의 사극들이 권선징악의 구도로 적의 패배를 그 끝으로 여기지만, ‘황진이’의 끝은 이렇듯 굴복이 아닌 화해이다. 황진이가 이러한 인물들의 화해를 통해 결국 싸우려는 것은 조선시대 예인, 기녀에 대한 편견과 핍박이다. 그것은 마음의 전쟁을 통해 벌어진다는 점에서, 황진이라는 마음 수도자에게는 해볼만한 대결이 되었다.

드라마의 본질이, 이 마음들이 부딪쳐 일어나는 갈등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황진이’에서 보여주는 마음싸움은 볼만해진다. 이것이 아니었다면 황진이가 벽계수를 찾아가 김정한을 살리는 것이 진정한 복수가 된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 황진이는 저 밖에서 벽계수를 격동시키고, 부용의 애틋한 마음을 빌어 김정한에게 자신의 처소를 알려주었다. 이것은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시키는 권력의 문제가 아니고 마음싸움의 문제다. 마음 줄이 가는 길을 유도하여 행동을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너무 단순하게 접근하면 유치한 드라마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황진이’의 드라마가 남다른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황진이’가 ‘웰 메이드 사극’으로 불릴만한 것은 비로소 사극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그저 과거의 의복과 배경, 이야기를 담으면 사극이라 했던 것에서, ‘황진이’는 미려한 미장센으로 포착된 전통의 미와, 우리네 자연적 배경의 아름다움(백무가 마지막 학춤을 추던 벼랑끝 같은)에, 울긋불긋 피어난 꽃처럼 도드라진 인물들을 집어넣음으로서 사극에서 우리 식의 미를 찾아내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여전히 ‘황진이’에 남는 아쉬움이 있다. 그것은 이 잘 만들어진 드라마가 이제 막 시작을 하려는 지점에서 끝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황진이가 탄생되는 과정이지 황진이의 본격적인 행보라 하기엔 어딘지 아쉬운 구석이 있다. 춤과 시, 그리고 음악에 출중했던 예인으로서, 또 인간의 길을 알고자 했던 구도자로서 황진이의 진짜 모습을 잡아내려 했다면 지금부터가 그 본격적인 시작이 되었어야 했다.

아마도 보다 드라마틱하게 ‘황진이’의 모습을 그리려다 보니 초기의 성장에 너무 힘이 집중되었던 것은 아닐까. 황진이의 인간적 조명보다 사랑에 더 무게중심을 두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24부작은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었을 것이다. 자꾸 시즌2를 기대하게 되는 것은 황진이의 사랑 이야기에 덧댄 인간적 모습이 그립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