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자이언트'의 주상욱, 주목받는 이유

728x90

입체적인 캐릭터로 겉껍질을 깨버린 주상욱

악인의 아들은 어떤 모습일까. "그냥 지겨워서. 그냥 다 털어버리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서." 미주(황정음)의 무릎을 베고 누운 조민우(주상욱)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한다. '자이언트'에서 미주가 나타나기 전까지 조필연(정보석)이라는 절대악의 아들인 조민우 역시 그 아버지의 그 아들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조민우가 미주를 만나면서 그의 사적이고 내밀한 모습이 보여졌고, 그제야 조민우가 가진 진짜 캐릭터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최근 조민우를 연기하는 주상욱이 주목받는 것은 드디어 본 매력을 드러낸 캐릭터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잘 생긴 얼굴에 분위기 있는 눈빛을 가졌지만, 주상욱이 지금껏 연기한 캐릭터들은 그의 매력을 한껏 끄집어내지 못했다. '그저 바라보다가'에서 그가 연기한 김강모는 지나치게 전형적인 부잣집 아들 역할이었다. 돈이면 뭐든 된다 생각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그렇게 얻으려 하지만 결국에는 좌절하고 마는. 그래서 조금은 비열한 짓들을 하게 되는. '선덕여왕'에서의 월야 역할은 물론 '그저 바라보다가'보다는 나았지만 그 존재감이 적었다. 덕만(이요원)을 도와 그녀를 여왕의 자리까지 올리는 역할이었지만, 유신(엄태웅)이나 비담(김남길) 같은 굵직한 캐릭터들 속에서 월야는 또 하나의 전형적인 캐릭터로 남았다.

'자이언트'의 초반부에서도 그 전형성은 또 반복되는 것처럼 여겨졌다. 조민우는 마치 '그저 바라보다가'의 부잣집 아들 김강모를 반복하는 캐릭터로 그려졌다. 하지만 그 캐릭터는 입체적으로 변했다. 드라마 속 부잣집 아들 혹은 악인의 아들 역시 악인일 수밖에 없다는 그 전형성을 깨면서 조민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주상욱은 조민우를 통해 대중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올 수 있었다. 부잣집 아들이라고 왜 고충이 없을까. 아니 야망을 위해 가족들 앞에서도 서슴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아버지 조필연을 보면서 자란 아들 조민우는 어쩌면 이 드라마의 또 다른 피해자가 아닐까. 이런 이해의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

"귀 막아줄 테니까 눈 감고 가만히 있어봐요. 그럼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 거예요." 조민우의 발견은 이렇게 그의 위로가 되어주는 미주의 시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고 편견 없이 바라봐주는 그 시선 속에서 조민우의 힘겨움이 보였다. 첫 만남에서는 부잣집 아들의 돈 자랑에 재수 없어 하다가, 차츰 그의 가시 돋친 겉모습 뒤에 숨겨진 부드러움을 발견해가는 과정은 미주의 시선을 빌어 이 캐릭터의 속내를 대중들에게 전해주었다. 따라서 미주의 민우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는 대중들의 시선 변화를 유도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미주가 민우의 귀를 막아주는 그 행동이 사랑스러운 것은 이미 우리가 민우라는 캐릭터의 힘겨움을 미주만큼 이해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주상욱이 조민우라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통해 깨어날 수 있었던 것은 '자이언트'라는 드라마가 가진 독특한 캐릭터 운용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는 '한번 선은 영원한 선'이라는 캐릭터의 전형성을 용납하지 않는다. 캐릭터들은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들을 다채롭게 보여주는데, 조민우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주인공 강모(이범수)를 사지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면서 아버지 조필연을 돕는 악역이지만, 미주를 만나면 멜로의 주인공이 된다.

게다가 이 멜로는 이제 '자이언트'에서 유일한 것이 되었다. 강모와 정연(박진희)의 멜로는 후에 다시 등장할 것이지만 지금은 복수를 향해 달려가면서 두 사람의 꼬여버린 대결구도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니 '자이언트'라는 긴박감 넘치는 드라마 속에서 민우와 미주의 멜로는 한 줄기 숨통이 되어준다. 민우가 미주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잠시 깊은 한 숨을 통해내는 것처럼, 시청자들도 이 장면들을 바라보며 쉴 새 없이 달리는 '자이언트'라는 욕망의 전차에서 잠시 동안의 편안함을 갖게 된다. 그러니 이 둘의 멜로는 주목될 수밖에 없다. 그 중 조민우라는 캐릭터는 더더욱.

주상욱이라는 연기자가 제 가치를 드러내며 주목받게 된 것은 물론 이 '자이언트'라는 드라마가 기회로 제공한 조민우라는 캐릭터의 힘이 크다. 하지만 모든 기회가 그 자체로 성공을 이뤄주지 않듯이, 이 조민우라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소화해낸 주상욱의 노력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주상욱에게 조민우라는 캐릭터는 어쩌면 이제 본격적인 연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속에 얼마나 많은 다른 얼굴들이 있을 지 자못 기대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