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무한도전' 레슬링 도전, 시청률 그 이상의 가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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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레슬링 도전, 시청률 그 이상의 가치

D.H.Jung 2010. 8. 30.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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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예능 그 이상의 도전이 갖는 가치

만일 시청률을 위한 것이라면 '무한도전' 레슬링 특집은 무모한 도전임이 분명하다. 들인 시간과 노력이 너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청률만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예전 가끔 예능 프로그램에서 했던 것처럼 레슬링 협회 같은 곳을 찾아가 적당한 시범과 몸 개그로 웃음을 뽑아내는 편이 낫다. 진짜 프로가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레슬링경기답게 해보겠다며 장장 1년 동안 기술을 배우며 링 바닥에 몸을 수십 번씩 내던지는 그런 행위가 어찌 시청률 하나만을 위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건 너무나 무모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대충 레슬링을 한답시고 흉내만 내면서 몸 개그를 시도한다면 그게 '무한도전'일까. 초창기 진짜로 '대한민국 평균 이하'였던 '무한도전'은 그랬을지 모르지만 이미 세월을 겪으면서 캐릭터의 성장과 함께 실제 출연자들도 성장을 거듭했던 '무한도전'에서 이런 '대충대충'은 허용되지 않는다. '무한도전'은 이미 댄스스포츠 대회에도 나간 적이 있고 에어로빅 대회에도 출전한 적이 있으며 심지어 그 살벌한 봅슬레이 위에도 오른 바 있다. '무한도전'은 이제 예능이 다루지 않았던 영역 바깥으로 나가, 예능이 다루던 방식 그 이상을 도전하는 프로그램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무한도전'의 레슬링은 기대치에 걸맞게 달라야 한다.

'무한도전' 레슬링 특집 편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은 그것이 예능 그 이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면서 동시에 그 도전 자체가 다른 것에 비해 훨씬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론 어느 정도는 합을 맞춰서 하는 것이지만 맨몸으로 부딪치는 레슬링은, '무한도전' 멤버들이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엄청난 고통을 통해 알게 된 것처럼 힘겨운 스포츠다. 하지만 힘겨워도 고통을 감내하며 링 위에 오르는 그들의 도전이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레슬링이라는 스포츠의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이 '무한도전'이 몸으로 보여준 모습들은, 한때 그저 쇼일 뿐이라는 오해의 시선 때문에 이미지가 추락한 프로레슬링에 충분히 긍정적인 시선을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무한도전' 레슬링 특집에 제기된 레슬링 협회와의 마찰이 생겨난 것은 오히려 '무한도전'이 여타의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이게 예능 맞아하고 물을 정도로) 지나치게 진지했다는 반증이다. 만일 그저 몸 개그를 끄집어내기 위한 제스처였다면, '무한도전'의 동호회 성격의 레슬링에 대해 프로 협회가 문제제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무한도전'의 멤버들의 실제를 방불케 하는 연습은 프로 경기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아마추어고, 레슬링이라는 경기 자체에 대한 찬사를 1년 동안 온 몸을 던지며 보여주려 했을 뿐이다. 여기에 대한 레슬링계의 비판은 가혹하다. '무한도전'은 예능 프로그램이지 다큐가 아니다. 레슬링을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목적은 좀 더 대중들에게 레슬링을 알려주기 위한 것일 뿐이지 레슬링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예능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는 비판에는 예능에 대한 선입견이 들어가 있다. 예능은 그저 재미있는 말을 건네고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웃음을 만드는 그저 그런 어떤 것이라는 생각. 하지만 이미 예능의 외연이 다큐와 드라마의 영역을 넘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그 속에 온몸을 던져 웃음을 만들어내는 예능의 몸이, 링이라는 경기장 위에서 몸뚱어리 하나를 던져 보는 이들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레슬링의 몸과 뭐가 다를까. 고통의 강도는 다를 지 몰라도, 그 몸이 해야 하는 일과 해내는 일의 강도는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저 늘 예능이 해왔던 웃음의 코드 속에서 익숙한 웃음을 반복하려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지만, 적어도 '무한도전'은 그런 프로그램이 아니다.

'예능이 아니라 다큐'라는 말은 역시 '무한도전'이 그만큼 예능에만 머물지 않고 그 한계 바깥으로 나가는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물론 부상 투혼까지 발휘하는 출연진들에게 좀 더 안전하게 도전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그저 평범한 사내들에게 겨우 1년이라는 시간을 주고(1년도 작을 것이다) 완전히 프로는 아니지만 그래도 레슬링다운 경기를 선보이겠다는 도전을 한 것 자체가 어떤 어려움을 내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몇몇은 진짜 선수 못지않은 실력을 선보이지만 몇몇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고, 바로 그것이 '무한도전' 레슬링 경기가 말해주는 진정성이다. '무한도전'의 레슬링 경기를 보기 위해 장충체육관에 운집한 관객들이 보고자하는 것은 레슬링 경기 그 자체가 아니다. 그간 '무한도전'이 해온 과정들을 확인하고자 함이다. 그 확인 과정을 통해 레슬링은 관객은 물론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새로운 영역을 향해 늘 새롭게 도전해가는 '무한도전'을 그저 시청률이라는 숫자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도대체 온 몸이 부서질 듯한 고통을 감내하며 1년 동안 지옥 같은 링 위에서의 연습을 어떻게 숫자 하나로 평가할 수 있을까. 그 몸의 고통스러움이 주는 지독한 진정성을 느끼면서, 바로 그것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웃음이 상대적으로 줄었다고 안타까워한다면 그것은 작금의 달라진 예능을 한 가지 면으로만 바라보는데서 나온 오해일 것이다.

이제 예능은 웃음은 물론이고 리얼함이 주는 진정성을 통한 감동까지 다양한 스토리텔링으로 다양한 재미를 추구하게 되었다. 예능의 외연이 이만큼 넓어진 데는 예능이 오로지 웃음에만 집착하지 않고 형식실험을 통해 다양한 차원의 재미들을 끌어안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무한도전'의 일련의 도전들은 예능 전체가 그 수혜자가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성공이든 실패든 도전해온 것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알게 되었다. '어 이런 것도 예능이 되네?', 하고 말이다.

모든 도전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결과보다 중요한 건 과정이다. 그리고 '무한도전'은 특히 이 도전의 과정이 갖는 가치를 그 어떤 것보다 더 집중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떤 도전 목표를 두고 그 목표를 향해 어떻게 걸어갔느냐가 중요하다. 실패? 적어도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실패란 그래서 없다. 도전 자체가 의미있는 것이라면 실패한 과정 자체 역시 성공이기 때문이다. '무한도전' 레슬링 특집이라는 도전은 그래서 실패가 아니다. 조금 떨어진 시청률로도, 또 예능 영역 바깥으로 나옴으로써 조금 줄어든 웃음으로도 '무한도전'이 1년 간 온 몸을 링 위에 던진 그 도전 자체가 주는 가치를 상쇄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