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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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성균관 스캔들’을 앓게 하나

D.H.Jung 2010. 10. 25.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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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오앓이와 중기홀릭, 그 이유

‘성균관 스캔들’의 이른바 잘금 4인방을 연기하는 연기자들은 지금껏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걸오 문재신 역의 유아인은 지금껏 걸오 만한 중량감을 연기한 적이 없다. ‘서양골동과자점 앤티크’에서도 또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도 그는 잘 생긴 소년이었다. 그것도 아주 여성적일 정도로 가녀린 느낌의. 그런 그와 현재 ‘성균관 스캔들’에서의 걸오 문재신은 이들이 과연 같은 연기자일까 의구심이 갈 정도로 다르다. ‘걸오하다’라는 말에서 따온 ‘걸오’의 뜻 그대로 그는 ‘성질과 심성이 거칠고 사나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화제의 또 한 축인 “나 구용하야”의 주인공 여림 구용하를 연기하는 송중기 역시 이 작품을 통해 비로소 진가를 보였다. ‘트리플’의 지풍호가 그 특유의 기분 좋아지는 명랑함으로 가능성을 보인 것이 사실이지만, 송중기를 깨운 건 다름 아닌 구용하다. 송중기는 구용하라는 캐릭터를 통해 소년의 이미지에서 심지어 여성성이 엿보이는 성숙된(?) 연기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특히 그의 빼어난 외모는 남장여자인 대물 김윤희(박민영)라는 존재에 사실성마저 부여한다. 여자보다 더 예쁜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송중기 본연의 중성적 매력이 구용하라는 유쾌한 캐릭터와 만나면서 이른바 ‘중기홀릭’은 생겨나게 되었다.

한편 이제 첫 연기에 도전한 이선준 역할의 믹키유천은 신인치고는 연기에 대한 집중력이 좋은 편이지만 확실히 연기가 미숙하다. 특히 감정 연기가 미숙한 그는 놀랍게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거의 하나의 얼굴로 이선준의 역할을 해내면서도 연기력 논란이 아니라, 오히려 호평을 받고 있다. 이유는 이선준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매력 덕분이다. 이선준은 고집스런 선비로서 많은 얼굴 표정 변화는 오히려 캐릭터에 부합하지 않는다. 믹키유천의 변하지 않는 얼굴 표정은 이선준의 속내를 오히려 궁금하게 만든다.

‘성균관 스캔들’이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연기자들을 화제의 중심에 서게 한 것은 단연 이들 캐릭터 덕분이다. 강하고 거친 이미지의 문재신, 어딘지 속없고 장난기만 가득해 보이는 구용하, 그리고 원리원칙만 강조하는 듯한 이선준. 하지만 한 걸음 다가가 보면 이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진짜 그들의 속내를 훔쳐보는 반전이 숨겨져 있다. 즉 문재신은 거칠어보여도 여자 앞에서는 딸꾹질을 하는 부끄러움을 타는 캐릭터이며, 구용하는 장난처럼 행동하지만 알고 보면 문재신이나 김윤희에 대한 걱정이 지극하다. 고집불통 같던 이선준은 결국 대물 김윤식에게 “(사내라도) 널 좋아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원칙을 깨는 인물이다. 겉과 다른 속. 오해로 시작해 이해로 다가오는 캐릭터들은 더더욱 매력적이다.

이 멋진 캐릭터들 사이에 놓여진 대물 김윤식(혹은 김윤희)을 연기하는 박민영이 주목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김윤희라는 캐릭터가 가진 매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김윤희는 많은 드라마 속 남장여자 캐릭터들이 그러했듯이 남자들의 시선에 포획된 존재와는 사뭇 다른 능동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면면을 보여준다. 물론 남녀 간의 연애감정에 있어서는 전형적인 여성으로 돌아가지만, 남장여자로 서 있을 때 그녀는 그 어떤 사내보다 당찬 모습을 보인다. 어찌 보면 김윤희 역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그 이면이 다른 ‘성균관 스캔들’의 캐릭터들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보인다.

‘성균관 스캔들’이 우리를 앓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캐릭터들 덕분이다. 겉보기에도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그 이면에 서로 다른 속내들을 감추며 부딪칠 때, 그걸 알고 바라보는 시청자들은 안타까움이나 감동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감동은 그걸 연기하는 연기자들에게 고스란히 전이되기 마련이다. ‘성균관 스캔들’을 앓게 하는 그 실체는 이 작품이 가진 놀라운 캐릭터들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