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너무 많은 말을 하게 될 때
인생은 정말 아름다운가. 이 질문은 모호하다. 작금의 현실적인 삶이 아름다운 것인가를 묻는 것인지, 아니면 조금은 관념적이지만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것인가를 묻는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둘 중 어느 질문에 대한 답변일까.
매번 극중인물이 넘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엔딩이 의도하는 바는 명백하다. 삶은 늘 그렇게 우연찮게 넘어지고 다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삶은 지속된다는 것. 인생은 그래서 아름답다는 것. 하지만 매회 누군가가 넘어져야 끝나게 되는 이 ‘꽈당엔딩’은 말 그대로 작위적인 것이다. 그래서 이 엔딩의 의도 역시 50여회를 반복하면서 하나의 강령처럼 느껴진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표현이 그저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귀에 대고 계속 해서 그렇다고 얘기하고 있는 듯한 강박적인 느낌마저 들게 되는 건 그 때문일 게다.
이 강박적인 느낌은 다시 인생은 정말 아름다운가 하는 질문의 두 가지 의미로 되돌아간다. 즉 ‘인생은 아름다워’는 저 ‘꽈당엔딩’처럼 이 두 의미의 질문을 하나로 엮는다. 현실적인 삶은 아름답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표현은 실제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래야 한다는 작가의 ‘의지’가 깃들어 있다.
그래서 배경이 굳이 비행기로 한 시간 정도는 날아가야 도착할 수 있는 제주도에 그것도 펜션이라는 공간으로 설정된 것에서도 작가의 의지가 느껴진다. 물론 작가는 늘 그래왔듯이 어떤 공간 속에서든 그 속에 있는 인물들의 다양한 부대낌을 그려낼 것이지만, 그 복작대는 삶을 마치 포근히 감싸 안는 제주도의 자연이나, 아무래도 보통사람들에게는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펜션이라는 설렘의 공간은 작가의 의지로 제공된 것이다.
이것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병태(김영철)네 가족들에도 마찬가지다. 평생을 바깥으로 돌다가 돌아온 시부(최정훈), 병태와 민재(김해숙)의 재혼가족이라는 상황,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결혼을 못하고 있는 병준(김상중)과 병걸(윤다훈), 재혼한 엄마를 둔 지혜(우희진) 그리고 동성애자인 장손 태섭(송창의). 이들이 엮어가는 이야기들은 꽤 복잡다단하지만 거기에 작가의 의지로 제공된 두 인물이 있어 이야기를 아름답게 만든다. 바로 병태와 민재다.
모든 힘겨움을 자신 속으로 숨긴 채, 가족들에게는 늘 웃는 얼굴로 그 어려움을 묵묵히 들어주는 병태나, 보다 능동적으로 가족들의 고통을 껴안고 이해해주는 민재는 판타지에 가깝다. 태섭이 커밍아웃을 할 때, 함께 울어주는 병태와 민재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감동한 것은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래야 한다는 부모 자식 간의 당위의 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김수현 작가가 의지를 갖고 있는 가족의 모습은 그것이 동성애라 해도 그저 가족으로 담담히 받아들이는 그런 모습이다. 도대체 가족이 가족을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논쟁의 여지가 있을까.
하지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태섭과 상우(경수)가 성당에서 언약식을 치르는 것은 상황이 다르다. 이것 역시 (굳이 성당에서 하려는 것) 작가의 의지가 만들어낸 것이지만, 여기에는 가족 바깥으로 나와 성당이라는 현실적인 실체와 부딪친다는 점이 다르다. 가족으로서는 이해할 수 있으나 그것을 공적으로 승인하는 장면을 아직까지 우리네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것은 성당이라는 더 복잡한 실체들과 맞물려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를 통해 김수현 작가가 보여준 동성애에 대한 시각이나 사회에 대한 열린 태도는 비판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본인의 의지를 작품 속에 직접적으로 담아내고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말하게 하는 방식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리 아름답다고 강변한다고 해서 인생을 아름답다고 여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누군가의 주장을 통해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색을 통해 의지적인 세계를 화려한 대사를 통해 엮어놓기보다는, 그것이 조금 거칠더라도 그저 담담하고도 리얼하게 상황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오히려 그 아름다움을 눈치 채게 할 수는 없었을까. 작품이건 작품 외적이건 김수현 작가가 좀 더 말을 아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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