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만 문제? 독한 드라마도 문제다
'아내의 유혹'의 김순옥 작가는 새로 들고 나온 '웃어요 엄마'의 제작발표회에서 이 드라마는 절대 막장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드라마적 재미를 위해 자극적인 설정이 있기는 하지만 막장은 아니고, 엄마들의 삶을 조명하는 가족극이라는 것. 과연 그럴까.
제목은 진짜 가족극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하지만 첫 회부터 손목을 긋고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이 등장했고, 2회에서는 여배우가 되려는 딸이 강간당할 뻔한 사실을 알면서도 성공을 위해 이를 묵이하려는 비정한 엄마 이야기가 등장했다. 3회에서는 궁지에 몰린 엄마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딸을 술 시중시키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됐다.
물론 작가의 말대로 이런 자극적인 설정이 그 자체로 그 드라마를 막장으로 평가하게 만드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전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물들이 비현실적으로 과장되어 있고, 지나치게 감정과잉의 경향을 보인다. 이 작품은 마치 연극의 독백처럼 인물들의 혼잣말이 잦다. 상황 자체가 인물의 감정을 자연스레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인물들이 자꾸 스스로를 설명하게 되는 것. 그만큼 얼개가 느슨하고 우연적 요소도 많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김순옥 작가가 "막장이 아니다"라고 강변한 것은 아마도 최근 등장한 막장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되는 몇몇 작품들 때문으로 보인다. '제빵왕 김탁구'는 국민드라마 반열에 들어섰지만 초반부 지나치게 자극적인 장면과 설정들이 등장해 막장드라마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작품의 완성도가 있었기 때문에 막장이라는 오명을 벗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이런 경향의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주말극인 '욕망의 불꽃'은 언니 자리를 빼앗기 위해 강간을 방조하는 동생의 모습이라든가, 뺑소니로 위장해 사람을 죽인다거나 하는 자극적인 장면들이 방영되었다. 거의 악마처럼 보이는 인물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뭐든 거침없이 해버리는 장면들은 매우 자극적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막장은 아니다. 바로 그 어쩔 수 없는 욕망에 대한 탐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순옥 작가는 아마도 이런 작품들과 자신의 작품이 같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욕망의 불꽃' 같은 작품은 과연 문제가 없을까. 사실 막장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은 TV라는 매체적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물론 불륜이니 살인이니 하는 소재들은 이미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등장했던 단골소재다. 하지만 이런 소재들이 연극이나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과 드라마로 보여지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그것은 드라마가 가진 연속극적인 속성 때문이다. 드라마는 다른 작품과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보는 것이 아니다. 매주 조금씩 끊어져서 보여지기 때문에 사실상 전체적인 완성도나 주제의식은 마지막회까지 미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결과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이 된다. 20부작 드라마에서 19부가 자극적인 내용으로 가득 메워지고 나머지 1부가 착하다고 해서 정당화될 수 있는 드라마는 없다.
게다가 드라마는 특성상 매번 챙겨보지 않는 시청자들도 많다. 그러니 한두 번의 자극적인 장면들도 사실은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셈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막장이 아니라고 해도 독한 설정들의 드라마가 문제가 되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마치 시청자를 자극하겠다고 작정한 듯한 드라마들의 그 의도성은 그 어떤 미사여구로 포장된다고 해도 그 자체로 비판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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