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로열 패밀리', 미스테리보다 더 흥미로운 것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로열 패밀리', 미스테리보다 더 흥미로운 것

D.H.Jung 2011. 4. 8. 09:01
728x90

그녀는 과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로열 패밀리'(사진출처:MBC)

거침없이 질주하던 '로열 패밀리'의 김인숙(염정아)은 과거에 발목을 붙잡히고 있다. JK클럽의 사장으로 취임하는 그 순간, 그녀 앞에 그 숨기고 싶은 과거처럼 죠니가 등장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JK그룹을 손아귀에 쥐려는 그녀는 이제 정가원 사람들과의 경쟁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아킬레스건인 과거를 은폐해야 한다.

김인숙의 과거가 전면에 조금씩 드러나면서 '로열 패밀리'의 스토리는 국면 전환을 했다. 재벌가에서 핍박받으며 '저거'로 불리던 며느리 K가 남편이 죽은 후, 자신의 입지를 세우고 김인숙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서는 그 상승의 스토리가 전면을 채웠다면, 이제부터는 그 상승에 제동을 거는 과거들과의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

김인숙의 욕망의 질주에 쾌감을 느끼며 동승했던 시청자분들이라면 이 변화가 마뜩찮게 여겨질 수도 있다. 드라마가 플래시백을 타고 자꾸 과거로 빠져들고, 점점 미스테리에 천착할수록 질주감은 점점 떨어지기 마련이다. 드라마의 속도는 오히려 더 빨라졌지만, 김인숙이라는 캐릭터가 펼쳐나가는 그 욕망의 속도는 과거라는 제동장치에 의해 느려졌다.

시청률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드라마의 속성상 미스테리와 반전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새로운 시청자층의 유입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드라마 전편의 이야기들을 온전히 이해해야 그 미스테리와 반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로열 패밀리'를 보는 시청자라면 사실 짤막한 플래시백으로 많은 숨겨진 과거를 유추해나가는 이 드라마의 스토리가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당연한 시청률 하락을 예상하면서도 굳이 과거의 이야기로 현재의 발목을 잡았을까. 물론 이 죠니의 의문사에 얽힌 이야기는 본래 이 드라마의 원작인 '인간의 증명'의 첫 시작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김인숙의 과거사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드라마가 그려내는 세계는 '로열 패밀리'라는 태생적으로 규정되어 있어 좀체 보통 사람이 뚫고 들어갈 수 없는 혈연집단 속으로 어떻게든 들어가 제 입지를 세우려는 김인숙이라는 캐릭터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김인숙은 정가원에서 '저거'로 불리는 K로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지만 자신의 능력만으로 태생적인 한계를 넘어서려는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상류층에의 편입 혹은 그들에 대한 복수. 괴물 같은 이중성을 보이며 김인숙이 K가 아닌 인간임을 그들에 의해 인정받으려 하지만, 결국 태생이라 불리는 과거가 그녀의 앞을 막아서는 것이다. 그녀는 과연 이 과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흥미로운 것은 그 과정에서 김인숙 역시 점점 정가원 사람들처럼 되어간다는 점이다. 흔한 말로 '괴물과 싸우면서 가장 조심해야 될 것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 현재를 발목 잡는 과거는,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지금 현재가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김인숙의 이 이야기는 그래서 태생적으로 규정되고 나눠지는 운명 앞에서 그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그 과거가 현재의 발목을 잡고, 그래서 드라마에 있어서도 현재의 역동성을 플래시백이 가로막아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지만, '로열 패밀리'의 이런 행보는 작품의 완결성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김인숙 그녀는 과연 이 과거와 현재가 벌이는 운명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그래서 어떤 식으로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 미스테리보다 더 흥미로운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