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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강력반', 왜 '싸인'처럼 되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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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는 '강력반', 무슨 이유 있나

'강력반'(사진출처:KBS)

'싸인'의 성공에 이어 '강력반'이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이것은 마치 형사물의 귀환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여겨졌다. 그만큼 멜로도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던 '싸인'의 성공이 가져온 형사물의 후광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와는 딴판으로 '강력반'은 아무런 존재감 없는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차이를 가져왔을까.

결과와 원인 모두 시청률이 말해주고 있다. '강력반'은 월화극 경쟁에서 늘 꼴찌였고 단 한 번도 두 자리 수 시청률을 기록하지 못했다. 타 경쟁작들 때문으로 보기도 어렵다. '짝패'는 사극임에도 불구하고 15% 정도 시청률에 머물러 있고, '마이더스' 역시 최완규 작가에 김희애, 장혁 같은 호화 캐스팅에도 10% 초반을 유지하다가 최근 들어 겨우 15%에 근접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강력반'의 부진은 외적인 이유보다는 내적인 이유에서 찾아질 수밖에 없다.

'강력반' 같은 형사물의 관건은 그 사건들이 얼마나 실감 있게 대중들에게 다가오느냐에 달려있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어떤 소재의 사건인가와 그 사건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느냐다. '강력반'은 과연 이 두 조건을 제대로 충족시키고 있을까. '강력반'은 형사물 드라마의 특징상 에피소드별로 구성되어 있는데, 먼저 소재를 보면 박세혁 형사의 개인사를 이용한 다이아몬드 절도사건, 프리마돈나 자리 때문에 벌어진 독극물 사건,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왕따와 연관된 살인사건, 조민주 기자의 아버지와 연관된 절도사건 등이다.

소재적으로만 봐도 그다지 주목을 끌만한 사건들이 아니다. 형사물의 장점은 그 무궁무진한 소재다. 세상에 사건은 넘쳐난다. 따라서 이들 사건의 소재들을 취사선별 하는 작업은 형사물의 성패 그 자체라고도 볼 수 있다. '싸인'이 다뤘던 연예인 살인사건은 가수 고 김성재군의 의문사 사건을 떠올리게 했고, 자동차 연쇄살인사건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길거리에 벌어지는 묻지마 살인 사건은 잊을만하면 뉴스로 보도되곤 하는 묻지마 살인의 끔찍함을 연상케했고, 또 한 회사에서 벌어진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은 이른바 매값 논란을 일으켰던 현실의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강력반'이 다루는 사건들은 이러한 현실감보다는 어디선가 이미 콘텐츠를 통해 봤던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다이아몬드 절도 사건은 해외의 장르물에서 흔히 보던 것들이고, 발레 이야기나 고등학교 살인사건 이야기는 추리만화 등에서 봤음직한 내용들이다. 그만큼 참신성이 떨어지는 소재들인데다, 그 사건의 진행 역시 지나치게 상투적이다. 심지어 사건이 벌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충의 전말을 예측하게 되는 건, '강력반'이 가진 가장 큰 치명적인 약점이다. 예상 못하는 반전에 반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예측한 대로 굴러가는 추리물은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

만일 사건의 흐름이 단순하다면 오히려 주인공 캐릭터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강력반'은 캐릭터 역시 어떤 확실한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 박세혁은 사고로 아이를 잃었고 그것 때문에 형사가 됐다는 사전 캐릭터 이야기를 갖고 있지만 거기서 성장하지 못하고 계속 머물러 있는 한계를 보인다. 조민주는 기자로서 형사와 함께 사건을 추적한다는 비현실성을 맹점으로 안고 있는데다가, 좀체 진지함을 잘 보이지 않아 자칫 가벼운 캐릭터로 오인될 가능성까지 갖고 있다. 물론 그녀가 아버지 때문에 아픈 과거를 갖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그것이 지금껏 구축된 그녀의 캐릭터를 바꿔주기에는 역부족이다. 즉 캐릭터는 일회적인 사건으로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과 일관성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력반'이 '싸인'처럼 흥미진진해지지 못한 이유는 총체적이다. 스토리는 단조롭고, 캐릭터는 참신하지 못하며, 소재 역시 화제성이 떨어진다. '강력반' 같은 형사물들이 현실의 사건들을 드라마 소재로 삼을 때 현실은 그만큼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왜 현실을 환기시키기보다는 장르의 틀에 박힌 이야기 속으로 '강력반'은 들어가게 된 걸까. 정말 제작진이 이런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역량 부족이었던 걸까. 혹 그것도 아니라면 KBS라는 공영방송이 가진 어떤 한계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딘지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는 느낌을 주는 '강력반'을 보며 느껴지는 의구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