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된 욕망을 투사할 악역이 필요해
'로열 패밀리'(사진출처:MBC)
서민들의 질박한 삶에 천착하는 '짝패'의 인물들은 대부분 선하다. 하지만 이 사극에서 막순만은 예외적인 존재다. 그녀는 적극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로 자신의 아들을 양반으로 둔갑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아들이 된 천둥을 이용해 그 아버지의 유산마저 노리는 인물이다. '짝패'는 이른바 착한 사극으로 긍정적인 인물들의 따뜻한 이야기들이 넘쳐나지만 그만큼 소소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강한 극성을 부여하는 인물은 역시 막순 같은 악역이다.
'마이더스'의 유인혜(김희애) 대표와 그 라이벌로 등장하는 유성준(윤제문) 역시 이 드라마의 극성을 만들어내는 인물들이다. 유인혜 대표는 겉으로는 멀쩡해보여도 속으로는 욕망을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악녀다. 유성준은 뭐든 갖고 싶을 걸 갖지 못하면 미쳐버릴 것 같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그 머니 게임 틈바구니에 끼여 있는 김도현(장혁)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진다. 물론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이자 착한 캐릭터인 이정연(이민정)은 너무 존재감이 약하다. 현실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있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악역의 존재감이 더 뚜렷하기 때문에 월화 드라마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천정명과 한지혜의 연기력 논란은 일정부분 어딘지 욕망이 거세된 캐릭터가 갖는 희미한 존재감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은 이민정이 연기하는 이정연이라는 캐릭터가 어딘지 답답하고 수동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악역이 주목받는 상황은 수목극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로열 패밀리'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 주인공이 그저 착한 캐릭터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괴물 같은 야누스적 면모를 보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김인숙(염정아)이 뚜렷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반면, 한지훈(지성) 같은 캐릭터가 보조적인 느낌을 주는 건 그 욕망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욕망에 몸을 던지는 정가원의 여인들의 암투가 재미의 근간을 이룬다.
반면 시작부터 관심을 끌었으나 어딘지 소소한 느낌에 머물고 있는 '49일' 역시 이른바 착한 드라마다. 물론 신지현(남규리)이 사고 뒤 연인이라고 생각했던 민호(배수빈)와 친구라 여겼던 인정(서지혜)이 사실은 재산을 노리고 자신에게 접근했다는 실상이 드러나고 신지현은 분개하지만 이 드라마는 결과적으로 복수가 아니라 '진실된 눈물 세 방울'을 찾아가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 주인공인 신지현의 현실적인 욕망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선한 인물들의 선한 이야기에 대중들은 더 이상 관심을 갖지 못하게 된 것일까. 어떤 강렬한 욕망을 드러내고 그것을 실현시켜 나가려 심지어는 어떤 선을 넘는 그런 캐릭터들에 대중들은 열광하고 있다. 반면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견디며 착하게 살아가는 캐릭터들을 대중들은 비현실적으로 여긴다. 왜 그럴까. 드라마의 키가 악역으로 넘어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핵심은 '욕망'이다. 욕망 추구가 윤리나 정의의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는 얘기는 그만큼 욕망이 좌절되는 현실을 말해주기도 한다.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비록 탈선한다고 하더라도 그 욕망의 질주를 해보고 싶은 욕구.
특이한 점은 이 악역들에 단연 악녀들이 부쩍 눈에 띈다는 점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바락바락 소리 지르고 심지어 속내를 숨긴 채 십여 년을 칼을 갈고 욕망을 쟁취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서슴지 않고 밟고 올라서는 그 악녀들은 지금 대중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 풍경에서 엿보이는 것은 현실에서 겪고 있는 여성들(로 대변되는 약자들)의 좌절된 욕망이다. 착하게 모든 걸 감내하고 견디는 삶이 더 이상 현실적인 보상이나 혜택으로 돌아오지 않는 현실. 그 누가 이들 악역에 매료되는 대중들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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