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구사시’, 당신이라면 어떻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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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시’, 당신이라면 어떻게?

D.H.Jung 2007. 1. 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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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간, 사랑과 욕망의 사중주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랑하는 그녀를 가슴에만 묻어놓고 멀쩡히 결혼해 살다가 갑자기 살 수 있는 날이 90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통보를 받는다면. 그녀와 함께 해야 행복할 것 같은 남은 마지막 날들을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잊었다고 생각했던 사랑이 다시 찾아와 이제 90일 밖에 남지 않았으니 자신과 함께 있어달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뒤늦게 그것이 진짜 사랑이었다는 걸 알았지만, 너무나 헌신적인 남편이 옆에서 늘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진짜 사랑을 찾아갈 것인가.

어느 날 자신과 함께 살아온 아내 혹은 남편의 사랑이 자신이 아닌 타인이라는 걸 알았을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은 배우자의 행복을 위해 그 혹은 그녀를 보내줄 것인가. ‘90일 사랑할 시간(이하 구사시)’은 사랑하며 아파하고 그러면서도 행복해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드라마다.

현지석, 90일 남은 남자의 선택
현지석(강지환 분)은 췌장암 말기 판정에 즈음해 고미연(김하늘 분)을 떠올린다. 죽음 앞에 당당할 인간이 어디 있을까. 그는 90일을 고미연과 함께욕망하게 되고 결국 그녀를 그 90일의 삶 속에 끌어들인다. 죽음 앞에서 현지석은 세상의 모든 윤리와 금기를 넘어선다. 사랑하는 그녀에게 달려가는 그 순간, 자신을 지탱해준 현실들(아내와 아이는 물론이고 고미연과 그녀의 남편)이 모두 흔들릴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는 마치 불나방이 불을 찾아들 듯 사랑 속으로 몸을 던진다.

만일 그의 선택이 그저 멀리서 고미연을 쳐다보고 그 가슴에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저 혼자만 태우는 것이었다면 ‘구사시’의 드라마는 이처럼 강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드라마의 극적 구성상 현지석의 선택은 당연한 것. 그리고 시청자들은 그 과정과 끝을 목도한다. 결국 죽어 없어지는 그 끝을 보면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욕망은 그렇다 하더라도 과연 저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남은 사람들을 모두 거친 격랑 속으로 끌어들인 자신의 선택은 옳았던 것일까.

고미연,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의 선택
고미연은 너무나 ‘착하고 헌신적인’ 남편, 김태훈(윤희석 분)의 모습에 화가 난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 자꾸만 이 남편이 아닌 90일 남은 남자, 현지석에게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90일 후면 사라질 그’라는 절박감과 애절함이 그녀를 자꾸 그에게로 욕망하게 만든다. 그런데 모든 걸 이해해주고 세심하게 챙겨주는 남편 김태훈은 그녀의 선택을 힘들게 만드는 존재다. 심지어는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를 그 남자에게 보내주는 김태훈에게서 고미연은 깊은 죄의식을 느끼게 만드는 사람이다.

만일 그녀의 선택이 죽어가는 그에 대한 연정이 아닌, 현실적인 사랑이었다면 어땠을까. 운명적인 사랑이란 나이가 들면서 차차 현실적인 사랑으로 변모하기 마련. 멀어서 환타지가 되고 마는 운명보다는, 차곡차곡 삶의 관계들을 쌓아 가는 사랑을 선택했다면 그를 보내고 자신도 차로 뛰어드는 그런 일은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욕망이 다 타고나서 결국 제 자리로 온 것이 아닌가. 그녀는 왜 그다지도 어려운 선택을 했던 것일까. 혹시 그건 사랑이 아닌 연민이나 욕망 같은 건 아니었을까.

박정란과 김태훈, 반려자의 행복을 위한 선택
이 마지막 90일의 시간 속에서 갑작스레 불타올라 타오르는 남녀의 뒤안길에 남은 박정란(정혜영 분)과 김태훈의 욕망은 애증에서부터 비롯된다. 자신의 사랑이 타인을 사랑한다는 걸 알게됐을 때, 그들은 미움과 함께 더 활활 타오르는 욕망을 갖게 된다. 보내줘야 할 것인가, 잡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잔인한 선택이다. 그것은 자신들도 보내줘야 할, 혹은 잡아야할 그들을 깊이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내주자니 욕망이 그걸 막고, 잡자니 반려자의 행복을 꺾는다는 죄책감이 그걸 막는다. 그래서 보내줬다가도 다시 잡고, 잡다가도 다시 보내주는 그들의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끝에서 다시 질문을 던지는 ‘구사시’
90일 이라는 시간의 용광로 속에 사랑과 욕망의 변주곡을 덩어리째 집어넣고 시종일관 불을 지핀 ‘구사시’는 바로 이 ‘선택’에 대한 드라마다. 불륜과 불치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구사시’가 신파가 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선택에 대한 진지한 질문들 때문이다. 마지막에 가서 현지석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 드라마를 이어가는 장면들은, 죽음을 끝으로 눈물바다를 만들며 끝나는 그런 드라마와 ‘구사시’가 다르다는 점을 말해주는 단적인 증거이다.

이 욕망의 사중주의 핵심에 있던 현지석이 죽음으로써 그 욕망은 끝을 보게되지만, 남은 이들은 어떻게든 그 욕망을 이어보려고 한다. 이미 죽은 현지석이 그들에게 하나하나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주는 장면은 물론 남은 자들 스스로가 만든 욕망과의 화해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 장면들을 보면서 시청자들의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그 사랑과 슬픔과 고통과 행복이 하나의 삶의 과정이라는 관조적 시선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드라마가 끝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지금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욕망하는가, 사랑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