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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남궁민|'내마들'은 어떻게 그를 재발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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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민, 최고 비운의 캐릭터를 만나다

'내 마음이 들리니'(사진출처:MBC)

"마루 오빠... 더 이상 안 찾으려구요." '내 마음이 들리니'의 봉우리(황정음)의 이 대사는 누구에게 한 것일까. 그것은 봉마루일까, 아니면 장준하일까. 봉마루였지만 이름을 버린 장준하(남궁민)에게 봉우리가 던지는 이 대사는 가슴을 짠하게 만든다. 갑자기 "마루 오빠..."라고 부르며 눈물을 흘렸을 때, 그것은 마치 거기 서 있는 봉마루에게 건네는 말처럼 다가왔다. 그래서 오빠로 서 있던 봉마루는 그녀의 말에 얼음처럼 얼어붙었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 후 이어진 "더 이상 안 찾으려구요."라는 대사는 거기 서있는 봉마루를 다시 장준하로 돌려놓는다.

봉우리의 이 짧은 대사 하나는 봉마루이자 장준하인 이 비운의 인물의 캐릭터를 모두 설명해준다. 한 때 봉우리의 오빠, 봉마루였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그는 봉마루가 아니라 장준하이고 싶어한다. 이 금기된 사랑을 앓는 장준하는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처럼 자기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돌아보기 싫다 해도 어떻게 또 하나의 삶이었던 봉마루를 지워버릴 수 있을까. 하지만 부모에게 버림받고 정신지체인 봉영규(정보석)의 아들로 자랐던 시절부터 갖게 된 모성부재의 애정결핍은, 아들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복수를 위해 그를 이용하려는 태현숙(이혜영)에게 집착하게 된다.

그의 비극적인 상황은 이 봉마루와 장준하 사이에 서 있는 지점에서 생겨난다. 봉마루가 사실은 그가 지금 복수하려는 최진철(송승환)과 김신애의 아들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만일 이 복수가 이뤄진다면 그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갖게 되는 셈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제 손으로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결국 눈을 찔러버리는. 그런데 이것은 오이디푸스의 비극에 멈추지 않는다. 그가 사랑하는 봉우리에게 자신은 원수의 자식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이다. 그 모든 비극적인 사실을 알게 된 봉우리는 그의 과거를 지워버린 채 장준하로 살아가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마루 오빠를 찾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장준하가 가진 캐릭터에는 이처럼 고전 비극의 인물들이 겹쳐져 있다. 그는 히스클리프이면서 오이디푸스이며 로미오다. 봉마루로서의 아프지만 선량한 과거를 갖고 있지만 그것을 못내 덮어버리고 장준하로서 자신의 행복을 찾으려는 그의 갈구가 비뚤어진 욕망이 아니라 절절한 진심으로 다가오는 건 그에게 겹쳐진 이 엄청난 비극을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운명과 대적하는 비운의 영웅이다. 그것이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 해도 포기하지 않는.

'내 마음이 들리니'의 주인공은 장준하가 아니라 차동주(김재원)다. 그런데 장준하가 오히려 더 주목되는 건 이 운명과 대적하는 캐릭터가 가진 힘이 단지 복수를 꿈꾸는 차동주라는 캐릭터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 봉마루이자 장준하라는 캐릭터는 그것을 연기하는 남궁민이란 연기자의 존재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금쪽같은 내 새끼', '어느 멋진 날', '부자의 탄생'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고, 영화 '나쁜 남자'나 '비열한 거리'에서 연기를 했지만 그의 존재감이 이처럼 두드러진 적이 있을까.

하지만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의 남궁민은 다르다. 그는 때론 악마같이 혹은 어린 아이 같이 욕망을 갈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비운의 주인공으로서 우수에 찬 장준하라는 캐릭터에 완전히 빙의되어 있다. 남궁민이라는 연기자가 가진 열정과 냉정이 순간순간 오가는 그 이미지는 무엇보다 이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캐릭터를 가장 잘 표현해내고 있기도 하다. 연기자는 연기력으로만 발견되는 게 아니다. 좋은 캐릭터를 만났을 때 비로소 자신 속에 꿈틀대는 연기자로서의 결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남궁민이란 연기자는 장준하를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