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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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젠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D.H.Jung 2011. 7. 19.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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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음악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음악은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 '무한도전-서해안고속도로 가요제'는 음악이 전하는 교감의 즐거움을 전해주었다. 어색함이 매력으로 발산된 정형돈과 정재형의 언발란스하면서도 진지한 탱고의 선율과, 음악을 통해 신구세대의 교집합을 만들어낸 박명수와 지드래곤의 디스코풍 리듬, 에너지의 끝을 보여준 노홍철과 싸이, 서로의 아픔까지 공감하며 음악으로 승화시킨 길과 바다, 강렬한 중독성의 음악을 선보인 정준하와 스윗소로우, 자유로움을 음악으로 탄생시킨 하하와 10cm, 그리고 흥겨운 한바탕 무대 뒤에 깊은 감동을 전해주었던 유재석과 이적. '무한도전'이 보여준 음악은 결과로서 보여지는 무대 위의 전율이 아니라 과정 자체가 주는 감동이었다.

'무한도전'이 무대 바깥의 감동이라면, '나는 가수다'는 무대 위의 전율이다. 감미로움과 기교의 끝을 보여준 정엽, 귀에 척척 감기는 감칠맛 나는 목소리의 김건모, 호소력 짙은 백지영, 단단하게 느껴지는 미성의 김연우, 깊은 울림의 JK 김동욱, 감성적인 이소라, 한이 뚝뚝 떨어지는 애끊는 가성의 조관우, 도전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김범수,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의 박정현 등등... 이 프로그램은 지금껏 TV에서 보기 힘들었던 가창력 가수들을, 그리고 그들이 부르는 전율의 명곡들을 재발견하게 만든다.

'나는 가수다'가 어른들(?)의 무대라면 '불후의 명곡2'는 절정의 가창력을 가진 아이들의 무대다.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를 모셔놓고 그 가수의 노래들을 재해석해 아이돌이 부르는 풍경은 신구세대 간의 교감의 즐거움을 준다. 그 과정에서 아이돌들에 대한 편견이 깨지고 그들도 풍부한 가창력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폭풍가창력의 효린, 호소력 있는 목소리의 이홍기, 감성이 돋보이는 지오, 즐거운 무대를 선사하는 창민, 에너지가 느껴지는 준수... 아이돌이 부르는 절정의 노래 앞에 감동하는 선배가수와 관객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프로그램이다.

한편 '톱밴드'는 지금껏 TV가 외면해왔던 밴드 음악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면서도 큰 의미가 있다. 가창력만이 아니라 악기 연주가 있고,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재기발랄한 개성이 있으며, 혼자만의 음악이 아니라 밴드 전체의 조화와 균형이 있다는 점에서 이 밴드들의 경연장은 색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특히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인디밴드들처럼 지금껏 방송에 출연하지 못했던 뮤지션들을 만난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심사를 해야 할 심사위원들이 심사가 아닌 감탄을 하는 이색적인 풍경은 이 프로그램이 주는 덤이다.

또한 경연이 아닌 서로 하모니를 맞춰가며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남자의 자격-청춘합창단'의 감동 역시 빼놓을 수 없다. 50세 이상 어르신들로 구성되는 이 '청춘합창단'의 남다른 이야기는 그 삶이 녹아있는 어르신들의 노래에서 나온다. 이미 먼저 세상을 떠나버린 아들을 위해 노래 부르고, 결혼을 하는 딸 앞에서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래 부르는 어르신들에게 조금 힘에 부치는 발성과 음정 박자가 뭐가 중요할까.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음악과 인생을 생각하게 만든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TV로 음악을 즐기는 방법은 그다지 다양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느 정도 다양함이 있다고 해도 그걸 즐길 수 있을 만큼 편성이 공정하지 못했다. 프라임타임대에 들어가 있는 음악프로그램은 대형기획사와 아이돌 중심으로 편제된 '뮤직뱅크', '음악중심', '인기가요'가 유일했다. 좀 더 다양한 라이브 음악을 들으려면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나 MBC '음악여행 라라라' 혹은 EBS '스페이스 공감'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됐지만, 이 프로그램들은 모두 자정에 편성되었다. 게다가 '음악여행 라라라'는 작년 10월 종영해버렸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 상황은 바뀌었다. TV의 프라임타임대는 이제 거의 음악이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는 상황. 오디션 프로그램을 비롯한 이른바 음악 예능이 대세로 자리하면서다. '나는 가수다'가 주말 예능의 모든 이슈를 잡아먹으면서 이제 오디션 형식은 지상파가 우선 건드려야할 지상과제가 되었다. 또한 '세시봉'이나 '하모니' 같은 음악을 소재로 한 특집이 화제를 모으면서 기존 예능 형식들, 즉 토크쇼나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도 너나 할 것 없이 음악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이토록 음악이 우리네 방송의 중심에 선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어쨌든 음악도 골라보는 재미가 생긴 요즘, 이제 음악을 좀 더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TV를 켤 일이다. 각자 취향에 따라, 기호에 따라 음악을 즐겨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