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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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신만찬>, 이토록 퇴행적인 드라마라니

D.H.Jung 2012. 5. 1.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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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만찬>의 출생비밀 집착 뭐가 문제일까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신들의 만찬>은 도대체 주제의식이 있기는 한 걸까. 적어도 소재에 대한 나름대로의 시도를 한 적이나 있는 걸까. 애초 <신들의 만찬>에 기대했던 것은 그 요리라는 소재가 가진(최근 요리 한류로 이어지고 있는) 매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을 보라. 요리라는 소재는 뒷전이 된 지 오래고 끊임없는 그 놈의 '출생의 비밀' 타령으로 등장인물들이 끊임없이 허우적대고 있는 꼴이다.

 

 

'신들의 만찬'(사진출처:MBC)

드라마 초반 요리 대결에 대한 에피소드가 몇 개 나오고 나서는 끊임없이 4각 멜로(그것도 인물들이 그럴 듯한 이유 없이 이리 저리 휘둘리는)가 반복되더니, 이제는 끝없는 핏줄 타령이다. 잃어버렸던 자식의 귀환, 그것을 막으려는 키워진 자식의 갖은 악행, 기억을 잃어버린 엄마. 드라마는 인물들이 엄마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도돌이표로 집어넣는다.

 

그나마 이야기에 개연성이라도 있었다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자식 고준영(성유리)이 엄마인 명장 성도희(전인화)를 추락시키려는 백설희(김보연)의 음모를 막는다는 이유로, 아리랑에 들어와 성도희와 각을 세우는 상황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꼭 그런 방법밖에 없을까(이 상황은 그래서 억지로 저 <하늘이시여>의 기묘한 모녀관계를 만들어내려는 의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그렇게 돌아온 고준영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 거라 판단하고 이를 온몸으로 막으려는 하인주(서현진)의 모습도 너무 전형적이다.

 

이것은 출생의 비밀이라는 드라마 코드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이다. 왜 등장인물들은 이 핏줄의 틀 속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할까. 하인주는 왜 굳이 그토록 힘겨운 시간을 버텨내면서까지 성도희의 딸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걸까. 이것은 생존의 문제가 아니다. 하인주는 이미 스스로 독립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고, 능력도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는 왜 여전히 '엄마'를 벗어나지 못하는 유아기 상태에 놓여져 있는 걸까.

 

이것은 고준영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타고난 요리 실력의 소유자이고, 생존력 또한 뛰어난 인물이다. 물론 어린 시절 잃어버린 부모 때문에 꽤 먼 길을 돌아왔지만, 그녀 역시 이제는 어엿하게 독립적으로 성공해서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런데 그녀는 왜 그렇게 여전히 '엄마'를 외치며 눈물 흘리는 아이로 퇴행하고 있는 것일까.

 

출생의 비밀 코드도 적절히 활용되면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극적 장치로 쓰여질 수 있다. 하지만 출생의 비밀 코드 그 안에 매몰되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설득력을 잃는다. 이 시대는 물론 핏줄이나 혈연 같은 운명적인 틀로 인해 삶이 고착되는 비극적인 현실을 안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정상적이라 여겨지는 그런 시대는 아니다. 과거에 발목 잡히기보다는 미래를 향해 나가는 것, 적어도 그것이 드라마가 보여줘야 할 비전이 아닐까.

 

<신들의 만찬>은 이미 성장한 사람들이 모두 아이 때로 퇴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준영과 하인주의 대결은 그래서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결국은 순혈을 가진 고준영이 그렇지 못한 하인주를 이기는(이것은 태생적으로 이미 결정된 것으로 드라마는 치부한다) 이 게임 속에서 그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친 딸이라고 끝까지 주장하는 일뿐이다. 이 얼마나 유아적인가.

 

과거 <제빵왕 김탁구> 역시 출생의 비밀을 드라마 코드로 활용했지만 적어도 그 드라마는 그 안에 성장의 과정을 집어넣었다. 출생이 모든 걸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노력으로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걸 은연 중에 보여주었다. 하지만 <신들의 만찬>은 어떤가. 고준영은 성도희의 순혈로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모든 재능을 부여받는다. 한 번 냄새만 맡아도 그 재료와 요리 방법까지 꿰뚫는 이 신의 재능은 오로지 그녀가 좋은 핏줄을 물려받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반면 오로지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 그 자리를 버텨온 하인주는 고준영의 등장만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한다. 이 드라마는 설마 제 아무리 노력해도 핏줄 잘못 타고나면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이 과연 21세기에 어린이 드라마가 아닌 성인들의 드라마에서 버젓이 내놓고 할 이야기일까. 얼개도 느슨하고 메시지도 공감하기 힘든 <신들의 만찬>은 그래서 그 어떤 막장드라마보다 더 막장스럽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도대체 이 불순한 드라마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