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추적자>, 괴물들이 사는 나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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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자>, 괴물들이 사는 나라

D.H.Jung 2012. 7. 1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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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괴물의 대결, <추적자>

 

“내 옆에는 사람들이 있어 물론 네 옆에도 사람들이 있겠지. 총리 자리면 신념도 버리는 대법관도 있고 돈이면 뭐든지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다르다. 법을 지키기 위해서 가족의 손에 수갑을 채우는 검사,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형부와 맞서는 기자, 사고를 당하고 자기 목숨이 위험한데도 나를 걱정해주는 형사. 강동윤. 이게 사람이다. 이게. 내가 아는 사람이다.”

 

'추적자'(사진출처:SBS)

딸이 죽고 아내가 죽고 탈옥을 하고 경찰에 쫓기며 밀항을 하려는 사람, 백홍석(손현주)은 강동윤(김상중)에게 “넌 참 불쌍한 놈”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백홍석이 사는 세상과 강동윤이 사는 세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추적자>가 보여주는 두 개의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사람이 사는 나라와 괴물들이 사는 나라. <추적자>는 결국 이 두 나라의 대결처럼 그려진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가 인간 백홍석에게 주는 시련은 참혹하다. 법정에 선 백홍석의 변론을 맡은 최정우(류승수)가 사건을 하나 하나 플래시백으로 되짚는 과정은 그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참상을 드러낸다. 딸이 사고를 당하고 그 딸이 깨어나길 간절히 바랐지만 결국 30억이라는 돈에 사주당한 친구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되는 현실, 범인을 잡겠다는 딸과의 약속을 지켜내지만 그렇게 잡은 범인을 경찰이 놔주는 현실이 그렇다.

 

위증과 조작된 증언을 서슴지 않는 법정, 탄원서조차 거부하는 학교, 친구들이 모아온 탄원서조차 채택하지 않는 법정, 그리고 조작되는 현실에 죽음을 맞이한 아내, 오로지 진실을 밝히기만을 원했지만 진실은 오히려 덮여지는 현실, 그를 도와주기는커녕 회유하려는 변호사, 피해자를 비아냥대는 검사, 힘 있는 자의 목소리만 듣는 언론, 결국 억울하게 죽은 딸이 원조교제에 마약을 하는 딸로 만들어지는 현실... 이것이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백홍석과 그 주변인물들이 사람이 사는 나라의 표징으로서 하나의 유사가족을 형성한다면, 강동윤과 그 주변인물들은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파편화된 가족을 보여준다. 백홍석이 말한 것처럼 그는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대신 마치 아버지나 형님 같은 황반장(강신일)이 있고 여동생 같은 조형사(박효주)와 막내 같은 박용식(조재윤)이 있다. 마치 동료처럼 도와주는 검사 최정우가 있고, 심지어 자신의 가족의 틀을 넘어서 정의를 지키려는 기자 서지원(고준희)이 있다. 그들은 사적인 이익이 아닌 인간애와 정의를 위해 백홍석을 돕고 나선다.

 

반면 강동윤은 버젓한 가족을 갖고 있지만 이것을 가족이라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다. 장인 서회장(박근형)은 자신의 권력과 이득을 위해서는 심지어 딸도 버릴 수 있는 인물이다. 이것은 백홍석과 대비를 이룬다. 서회장의 딸인 서지수(김성령)는 아버지를 버리고 남편 강동윤을 선택한다. 강동윤의 비서인 야심가 신혜라(장신영)는 자신의 야심을 실현시키기 위해 서회장과 강동윤 사이에서 저울질을 한다. 서회장의 아들인 서영욱(전노민)은 강동윤에게 복수하기 위해 동생 서지수와 맞선다. 이건 가족이 아니다. 한 사람의 생명보다 권력욕이 우선인 삶, 괴물들의 삶이다.

 

법정에서 백홍석의 무죄를 주장하는 최정우에게 당사자인 백홍석은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죄가 뭔지도 모르지만 “거기에 맞는 벌을 받겠다”고 한다. 이 모든 일들이 “죄는 지었으되 벌은 안 받으려다가 생긴 일”이라는 그의 진술은 이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추악한 얼굴을 끄집어내 보인다. 가해자는 자신이 도리어 피해자라고 거짓을 말하고, 피해자는 자신이 가해자가 맞다며 진실을 말한다.

 

우리가 <추적자>를 보며 강동윤의 거짓에 분노를 보내고, 백홍석에게 깊은 동정을 하게 되면서도 그것이 보여주는 지독하고도 리얼한 현실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안타깝게도 우리가 그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발을 딛고 있다는 얘기는 아닐까. 막판 대선에서 투표장으로 달려온 유권자들이 판세를 뒤집을 때 느꼈던 그 카타르시스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이 드라마 같지 않은 드라마가 우리에게 전하는 진중한 메시지일 테니.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우리는 괴물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을 선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