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의 병원, 우리 사회의 축소판
전쟁터에 가까운 응급실이다. 대형사고라도 터지만 병상이 없어 복도까지 메운 환자들이 저마다 살려 달라 고통을 호소하고, 의사들은 마치 전장을 누비듯 온 몸에 피칠갑을 한 채 응급실을 뛰어다닌다. 1분 1초에 환자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그 혼돈. 그 속을 단 한 명의 환자라도 더 살리겠다고 뛰어다니는 의사들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골든타임>은 우리가 숱하게 봐왔던 <병원 24시> 같은 다큐 속의 응급실을 소재로 하지만, 그것이 다루는 것은 이 훈훈한 다큐와는 사뭇 다르다.
'골든타임'(사진출처:MBC)
히포크라테스가 되살아난 듯한 이제는 고전적으로까지(?) 보이는 진짜 의사 최인혁(이성민)은 외과의이면서도 응급실에서 외상환자들을 수술한다. 외상환자들을 외면하는 의료현실 속에서 최인혁은 이질분자다. 그래서 일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이 병원의 과장들은 그를 소외시킨다. 응급의학과 과장 나병국(정규수)은 응급실을 사실상 맡고 있는 최인혁을 전혀 도울 생각이 없고, 정형외과 과장 황세헌(이기영)은 제 일신에 좋은 일만 찾아서 하려고 한다. 신경외과 과장 김호영(김형일)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고, 일반외과 과장 김민준(엄효섭)은 같은 외과면서도 절대로 최인혁을 받아주려 하지 않는다.
생명을 다루는 곳에서 권력이니 이권이니 하는 말이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이미 우리네 의료현실이 돈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당장 환자가 죽어나갈 마당에도 그들은 병원의 이익을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돈이 없다면 병원도 존재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최인혁이 밉보이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병원이 아닌 환자만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침 트라우마(외상) 센터를 세우려는 마당에 그 센터장으로 최인혁이 될까봐 그들은 조바심을 느낀다. 사실상 아무 것도 없는 맨바닥에서부터 외상 환자들을 수술해온 최인혁이 만든 밥그릇에 저들이 숟가락을 꽂으려는 심사다.
과장들의 담합으로 수술금지령이 떨어지지만 바로 앞에 죽어가는 환자를 외면하지 못하는 최인혁은 결국 메스를 들게 되고 그것은 그가 쫓겨나게 되는 빌미가 된다. 사람을 살리겠다고 최선을 다한 의사는 징계를 받고, 뒷전에서 권력놀음을 하는 의사는 기회를 얻는다. 이쯤 되면 슬슬 생각나는 것이 있지 않은가. 이것은 병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매일 겪는 현실이다. <골든타임>이라는 의학드라마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바로 이 응급실이 우리 현실의 축소판처럼 여겨지게 되는 지점에 있다.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를 서로 자기 과가 아니라며 다른 과로 미루는 모습을 보이던 의사들이 VIP의 전화 한통으로 180도 돌변하는 현실. 의식 불명의 환자를 뒤로 하고 나오면서도 “얼굴 도장 찍었으니” 포커나 한 판 하자는 식의 농담을 던지는 의사들. 그들에게서 환자의 생명 운운하는 것은 순진하게만 여겨진다. 이것이 현재 우리네 의료현실의 단면이다. 본래 사람을 살리겠다는 그 목적을 벗어나 출세와 권력을 위한 도구처럼 선택되는 의사라는 직업. 일반외과의들이 점점 사라지고 돈이 되는 과들로만 몰려드는 건 이런 세태를 잘 보여준다. 하물며 사람 목숨을 다루는 것에도 이럴 진대, 사회는 어떨 것인가.
<골든타임>이 그리고 있는 이 응급실이라는 공간은 그래서 갖가지 사회적인 아픔으로 신음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표상하고 있는 듯하다. 그 고통을 치유해줄 의술도 있고 여력도 있지만 권력에만 몰두하는 그들은 환자를 다루는 것조차 처세로 여긴다. 그래서 의사도 있고 응급실도 있지만 이런 시스템적인 문제 때문에 환자들이 죽어나가는 응급실, 이것이 바로 우리네 현실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래서 징계위원회에 불려간 최인혁이 오래도록 갖고 있었던 듯 꼬깃꼬깃해진 사표를 제출하는 장면은 마음 아픈 정도를 넘어 보는 이들을 분노하게 만든다. 도대체 그 더러운 현실에서 얼마나 사표를 던지고 싶었을까. 하지만 병원을 떠나면서도 눈앞에 있는 환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최인혁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찾고 있는 유일한 희망인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던진 사표는 그래서 우리를 더 아프게 한다.
<골든타임>이 독특한 것은 의학드라마를 통해 우리네 현실을 투영해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 <추적자>의 의학드라마판을 보는 것만 같다. <추적자>의 백홍석(손현주)이 판사에게 “제 죄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살았을 뿐입니다”라고 했던 것처럼, <골든타임>의 최인혁 역시 죄라면 의사로 열심히 환자를 살리려 한 것뿐이다. 도대체 이 순수한 의지들은 왜 번번이 꺾어져 버리는 걸까. <골든타임>의 응급실은 아프게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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